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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차인간
칠 격(擊), 떨칠 불(拂), 격불(擊拂).
말차와 같은 가루차를 찻사발에 담고 70°C 정도의 온수를 부어 차선(茶筅)이란 대나무 도구로 풀어주는 행위를 뜻합니다. 찻가루와 물이 잘 섞여 촘촘하고 고운 거품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손목 스냅을 이용해 찻사발의 벽을 치는 느낌으로 찻찻찻, 세차게 풀어주는 것이 관건이죠. 소란한 과정입니다. 격불을 마치고 나면, 조밀한 녹빛 거품과 싱그러운 풀향이 찻사발 안을 고요히 메웁니다. 마음의 번뇌를 격렬하게 털어내고 나면, 비로소 순수한 평화가 찾아오는 것처럼요.
지난 5월, 우연히 말차를 접한 나는, 홀린 듯 차선과 찻사발과 세리모니얼 그레이드의 말차를 구매하였습니다. 처음엔 맹물에 말차를 격불 하여 마셨고, 이어서 라테, 토닉, 코코넛 워터까지 맛의 스펙트럼을 넓혀갔습니다. 현재는 1일 1말차를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
말차는 수확하기 약 3-4주 전부터 차밭에 차광막을 쳐서 햇빛을 차단합니다. 햇빛을 받지 못한 잎은 생존을 위해 엽록소를 폭발적으로 만들어낸다죠. 이 과정에서 떫은맛(카테킨)은 줄어들고, 감칠맛(테아닌)은 극대화됩니다. 그리고 가루를 내었을 때 탁하거나 노란 기가 전혀 없는 선명한 비취 빛 녹색을 띱니다.
그중에서도 세리모니얼 그레이드 말차, 차나무가 겨울을 나고 맞이한 첫 번째 봄(4-5월경)에 틔워낸 가장 젊고 여린 잎만을 수확하여 분쇄한 것. 세리모니얼 그레이드는 잡미가 없고 해조류를 연상시키는 고유의 감칠맛이 오래가기 때문에, 오롯이 따뜻한 맹물에 차선으로 격불하여 마시는 것이 정석이죠. 하지만 2주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말차를 마셔본 결과, 그 정석, 조심스럽게 옆 차선으로 밀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레시피를 시도했지만 우선, 말차 라테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세리모니얼 그레이드에 한해서는요. 왜냐하면 뭐랄까, 말차가 우유를 만나 최고의 시너지를 내려면 쓴맛과 떫은맛이 강한 쪽이 좋다고 봅니다. 세리모니얼 그레이드에서는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과 같은 묵직한 킥이 나오질 않더군요. 싱그러운 풀향과 신선한 해조류 맛으로 열심히 발차기를 해대지만 물속에서 흐느적거리는 느낌이랄까요. 아무래도 햇빛 대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자란 어린잎이니까요. 섬세하고 연약한 이모 키드(emo kid)인 거죠.
그러므로, 아이스 말차 라테를 맛있게 즐기려면 보급형 컬리너리 그레이드(Culinary Grade)를 사용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입니다. 우유의 헤비함을 뚫고 나올 정도로 강인하고 거친 맛을 내는 데다가, 가격도 싸고요.
그리하여 말차 라테는 논외로 두고, 내가 생각했을 때 여름철 최고의 말차 음료는 토닉 워터 또는 코코넛 워터와의 조합입니다.
레시피 1: 말차토닉
- 얼음
- 토닉워터
- 따뜻한 물에 격불한 말차
- (Recommended) 레몬 한 조각
- (Recommended) 꿀 1TS
레시피 2: 말차코코
- 얼음
- 코코넛워터
- 따뜻한 물에 격불한 말차
말차+코코넛워터에 우유나 휘핑한 크림을 조금만—1 or 2온스 정도—첨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차 라테처럼 우유가 지배적이라든지 묵직하게 크리미한 느낌이 아닌, 부드러운 목 넘김만 조금 더한다는 느낌으로요. 그러면 '말차 클라우드'라는 신비로운 음료가 됩니다. 상쾌한 말차 향기 뒤로 밀키함이 올라오고, 마지막 순간에 코코넛이 혀끝을 톡 건드리죠. 여름의 녹차밭에 구름이 지나갈 때, 그 그늘진 자리에 부는 서늘한 바람 같은 맛이랄까.
레시피 3: 말차 클라우드
- 얼음
- 코코넛워터
- 따뜻한 물에 격불한 말차
- 우유 또는 휘핑크림 1 or 2온스
- (Optional) 스테비아 1ts
말차에 대한 갈망은 커피에 대한 그것보다 덜 해로운 느낌이 듭니다. 말차 속에 들어있는 테아닌 성분이 카페인이 몸에 급격히 흡수되는 것을 막아주는 천연 완충제 역할을 한다죠. 그래서일까, 완만하게 정신이 차려지는 느낌입니다. 마치 부드러운 각성과 같은.
요즘 나는 한 잔의 말차를 마시기 위해 한 잔의 커피를 참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를 더하기 위해 하나를 빼는 실질적인 미니멀리즘의 실천. 구체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이 동반되는 취향 하나가 늘어난 일상. 그리하여 조금 더 정갈해지는 나날.
- [[말차|말차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