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og-writing
# 21세기 우화 마법의 책을 파는 상인
서울 어딘가, 하릴없이 책을 읽고 헛소리나 쓰며 살아가는 욘킴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주머니에는 기도 메타밖에는 남지 않은 미국 주식 몇 푼 뿐이었지만, 그녀는 고양이(8kg), 물고기(2g)와 함께 어떻게든 내일의 태양을 믿으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동네에 마법의 책을 파는 상인이 나타났습니다. 상인은 [kyobo]라고 쓰인 커다란 보자기를 펼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안녕! 이 책을 읽으면 더위도, 추위도, 배고픔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을 걸세. 현금이면 가장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교보페이,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페이코 등 간편 결제를 비롯해 신용카드, 실시간 계좌이체, 휴대폰 결제, 문화누리카드(NH카드) 등 다양한 결제 수단을 지원한다네"
욘킴은 솔깃했습니다. 그녀는 책을 하나 샀습니다. 글자를 읽느라 살짝 피곤했지만 상인의 말대로 정말 추위도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고, 몸이 가벼워진 듯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상인은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엔 미래를 보는 문장이 가득 담긴 특별 한정판을 가져왔네. 이걸 읽으면 자네 주식이 언제 오를지도 알 수 있을지 모르지."
욘킴은 더욱 솔깃했습니다. 그녀는 그 책도 샀습니다. 하지만 주식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상인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주식이 안 올랐다고 너무 실망 말게. 그건 자네의 통찰이 부족해서 그래. 여기, 선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사상/철학 고전이 있네. 이걸 읽으면 자네의 헛소리가 황금 같은 통찰로 변할 것이야."
욘킴은 그 책도 샀습니다. 그런데 상인이 건넨 사상/철학 고전들을 펼치자마자 욘킴의 방에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칼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는 그녀의 쓸데없는 망상을 가차 없이 도려냈고, 욘킴은 황홀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모든 지혜의 물리적인 부피였습니다.
처음에는 책장에 차곡차곡 쌓이던 책들이 어느덧 컴퓨터 옆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8kg의 거구 고양이가 올라앉아도 끄떡없는 캣타워가 되더니, 갈수록 방 전체를 에워싸는 거대한 성벽이 되었습니다. 욘킴이 한 권을 미처 깨우치기도 전에 책들은 스스로 분열하고 서로 다른 책을 초대하고 증식하면서 방을 가득 채워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보게, 욘킴! 이제 그만 사고 완독을 하든지 처분을 하란 말이야! 그러다 책에 매몰되겠어!"
창밖에서 이웃들이 소리쳤지만, 욘킴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냉소적 문장 속에 파묻혀 "세속의 소음은 무의미하다."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한 달째 되던 날, 욘킴의 집에서 우두득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방 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압축된 책 기둥들이 단단하고 거대한 줄기처럼 뻗어 나가더니, 기어이 천장을 뚫고 솟구쳐버린 것입니다. 책들은 마치 '잭과 콩나무'의 줄기처럼 구름 위를 향해 끝없이 자라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기이한 광경을 보며 수군거렸습니다.
"저것 봐, 저 집 옥상에서 지혜가 자라나고 있어!"
"아니야, 저건 지적 허영심이 자라나는 거야."
마법의 책을 파는 상인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골목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책 사세요, 책 사세요.")
천장이 뚫린 덕분에 비바람이 들이쳤지만, 욘킴은 평온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비에 젖지 않는 형이상학 챕터를 마친 상태였으니까요. 그녀는 구름 위까지 뻗어 올라간 책 기둥을 영차영차 기어 올라가, 사상/철학 줄기에 앉았습니다. 그리곤 여전히 파란불인 미국 주식 차트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트럼프 집권 내의 예견된 운명이며, 나의 가난은 존재론적 필연이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책 탑 아래에서 어느덧 사람 말을 흉내 내기 시작한 고양이 드루(8kg)는 고양이용 다이어트 사료는 사악한 비즈니스 마케팅이라며 꼬리를 붕붕 휘둘렀고, 베타 물고기 구글이(2g)는 천장이 사라진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느껴 보는 진짜 태양 빛의 경이로움에 눈을 꿈벅였습니다.
이제 욘킴의 머릿속은 우주를 유영할 만큼 가볍고 자유로웠으나, 그녀의 신용 등급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워지고 있었습니다.
# Outgoing Link
[Brunch: 마법의 책을 파는 상인](https://brunch.co.kr/@yonkim/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