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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킨버거
오늘은 햄버거가 몹시 당기는 날이었습니다. 평일엔 식단을 조절하는 중이므로 끼니마다 신중해야 했습니다. 아점으로 먹은 것들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구운 달걀, 견과류, 고구마 반 개, 두유 한 컵. 고소한 것들이지만 세속적으로 고소하진 않습니다. 극강의 자본주의적 고소함을 대표하는 치킨 치즈 마요 버거가 아른거렸습니다. 감자튀김과 정상적인 콜라(비정상적인 콜라: 제로 콜라)를 포기한다면 칼로리와 더불어 죄책감과도 타협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모든 고민은 단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왕 중의 왕, 버거킹.
탄단지를 모두 포용하고 있음에도 5천 원 남짓한 가격이라니, 호의적인 마음으로 증권 앱에서 레스토랑 브랜즈 인터내셔널(티커: QSR)을 살펴봅니다. 매출 구성 중 버거킹은 14.0% 이군요. 호르무즈 역봉쇄 대치 상황 속에서도 희망적인 무빙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른쪽 위를 향해 솟구치는 강인한 차트가 나의 다이어트에도 용기를 줍니다. 비로소 마음에 확신이 섰습니다. 오늘은 버거킹입니다. 치킨 치즈 마요네즈, 티커: 치치마. 풀매수입니다.
버거킹은 집에서 2.1km 거리에 있었고 배달로 주문할지 포장해 올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매장에 앉아서 먹는 건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나에게 먹거나 마시는 건 지극히 사적인 행위입니다. 내향인이냐, 외향인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낯선 이들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우물거리며 삼키는 일은, 거울 대신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양치질을 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꺼려집니다. 이러한 연유로 반드시 그 자리에서 먹어야 더 맛있는 몇 가지 예외(i.e. 순댓국, 타코, 소곱창구이)를 제외하곤 어지간해서는 매장에서 먹지 않습니다. 같은 이유로 커피숍에 앉아서 마시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주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스탠딩 바에 서서 마시고 나가는 조건으로 500원을 깎아준다면 아마도 그 커피숍에 매일 들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버거킹은 배달인가, 포장인가? 나는 직접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므로 걷기로 합니다. 치즈와 마요네즈만큼의 등가교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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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생각보다 더웠고, 옷은 생각보다 두꺼웠습니다. 초여름으로 내리쬐는 햇빛 아래 울 스웨터라니,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1.7km쯤 걸었을 때 잠시 마음에 갈등이 일었습니다. 감자튀김도 없는 치킨버거 하나를 사려고 마냥 걷기로 한 발상 자체가 별로란 느낌이었습니다.
사거리 너머의 버거킹 간판이 가로수 사이로 슬쩍 보이지 않았다면, 마침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바로 옆에 있던 피자집에 난입해서 어설픈 강도처럼 "다, 당장 페퍼로니 피자 내놔!"라고 으름장을 놓았을 것입니다. 다이어트는 온순한 사람을 이토록 폭력적으로 만드는군요.
키오스크 버튼을 누르는 꼴이 영 어색합니다. 평소라면 쳐다보지 않을 '치킨' 버거 '단품'을 고르고 '엑스트라' 옵션을 애써 못 본 척합니다. 음료는 비정상적인 닥터페퍼(닥터페퍼 제로)를 선택했습니다. 어디에도 감자튀김(L)이 없는 영수증은 비정상적으로 짤막합니다. 주문번호 502번, 치킨 치즈 마요 버거(단품) x1개와 닥터페퍼 제로, 포장. 도무지 내 손으로 주문한 것 같지 않은 메뉴를 읽고 또 읽어도 눈에 익질 않습니다. 버거킹 점원이 출력된 주문지를 오더 랙에 꽂으려다 말고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도 낯선 듯하군요.
나는 은근히 그녀의 오지랖을 기대합니다. 그녀가 나에게 한 번만 물어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예쁘게 미소 짓지 않더라도, 상냥하지 않더라도 단 한마디로 나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텐데요. "감자튀김은 안 하세요?" 단 한마디로. 그러면 나는 곧장 주문을 취소하고 감자튀김(L)과 치즈와 마요네즈 올 엑스트라를 감행할 것입니다. 닥터페퍼는 슈거 쇼크가 올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 할 작정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오더 랙에 주문지를 꽂습니다.
마치 공기만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벼운 봉투를 들고 허전한 마음으로 버거킹을 나섭니다. 이제 다시 2.1km를 걸어야 합니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를 보니 마음의 갈등이 더 심해지지만, 보이지 않는 몽둥이에 쫓기듯 걸음을 재촉합니다. 순전히 의식적인 노력입니다. 지나가는 배달 스쿠터를 강탈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꾸역꾸역 걸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치킨 치즈 마요 버거(단품)를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일종의 화풀이 의식이었습니다. 20초쯤 뒤에 그것을 다시 주워서 먹는 비참함이 어떤 것인지 미리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습니다. 주섬주섬 주워 먹은 치킨버거의 맛은 꽤 괜찮았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고소하고 헤비한 맛이었지만 위장 안에서는 결코 헤비하지 않았습니다. 올 엑스트라 옵션을 못 본 척한 것은 실로 지혜로운 외면이었습니다.
먹으면서 읽던 역사책을 마저 읽었습니다. 역사 속에서는 언제나, 인류에 관해 적어도 두 종류의 서로 갈등하는 서사가 존재합니다. 인류가 낙원이라는 관념과 파멸 사이를 오가며 충돌했듯 나의 다이어트 서사에서도 절제와 저항이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낙원을 건설하거나 도달할 수도 없으며 어느 누구도 절대적 진리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낙원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부단히 질문을 던질 뿐입니다. 싸울지 말지, 먹을지 말지. 오늘의 나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나쁘지 않은 답을 찾았고, 내일 첫 루틴은 하체라는 건설적인 계획도 세웠습니다. 오늘의 치킨버거, 다이어트 실패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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