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안녕, 안녕들하세요. 이 더운 날씨에, 또 공사가 다망하신 와중에 이렇게 찾아주시니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각설하고 제가 전해 듣기로는, 고양이를 이미 키우고 있어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 않더라도 그렇게들 고양이를 좋아들 하신다고요. 어떤 분들은 알레르기가 있는 와중에도 약을 먹고 안약을 넣어가면서까지 고양이를 만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던데요. 고양이가 귀여워 죽겠는 것이죠, 네네. 이해합니다. 아, 그런데, 저도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아, 혹시 모르셨을까요? 그렇군요. 모를 수 있습니다. 모를 수밖에요. 왜냐하면 제가 말을 한 적도 없고, 키우고 있는 고양이 사진을 종종 올리곤 하니까요. 괜찮습니다.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3년쯤 전에 내과에서 시험 삼아 받아봤던 알레르기 검사 결과에 그렇게 나오더군요. 저는 개와 고양이 둘 모두에게 알레르기가 있다고요. 그런데,
네? 확실하냐고요? 아, 네네, "개와 고양이 털 및 비듬 알레르기"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 밑엔 집먼지 알레르기도 있었고요. 솔직히 집먼지 쪽은 누구라도 알레르기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 모든 사람이 먼지 구덩이 속에서 기꺼이 살 테니까요. 어쨌든 '흡인성 항원' 카테고리의 몇 가지가 '주의'로 체크되어 있었으니, 저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들을 주의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의외로 '식품성 항원' 쪽에서는 꽤 괜찮은 성적이었는데, 그러니까 땅콩, 우유, 치즈, 새우, 게, 돼지고기, 복숭아, 키위 같은 것들은 모두 안심하고 먹으라는 결과였거든요. 역시 저는 먹는 쪽에 강하달까요. 하하, 이것 참. 과연 살이 빠지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아, 어디까지 이야기했지요?
아아, 알레르기였죠.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개와 고양이 그리고 집먼지에게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심하지는 않아서 평소에는 개 고양이와 함께 먼지가 굴러다니는 방 안에 있더라도 증상이 나타나진 않습니다. 네, 참으로 다행이죠.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이 말하기를, 면역이 좀 떨어지면 재채기나 두드러기 반응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또한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제가 면역이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좋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저의 유년 시절이 스마트폰이나 PC 게임을 붙들고 놀던 세대라기보다는 놀이터에서 해가 지도록 뛰어놀던 시대라서요. 아, 물론 DOS 게임이나 슈퍼패미콤은 조금 즐겼지만요. 대개의 날들은 놀이터 흙을 주워 먹거나 철봉을 혀로 핥아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혀 씻지 않은 손으로 슬쩍 저녁 식탁에 앉곤 했죠. 돌이켜보면 말이죠, 그 과정에서 천연 면역 체계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유럽의 어떤 자연주의 놀이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숲속에서 마구 뛰어놀게 하고, 흙이 잔뜩 묻은 손을 대충 털기만 한 뒤에 간식을 먹도록 장려한다더군요. 자연 상태의 흙이나 먼지 속에는 수많은 무해한 미생물과 세균이 존재하는데, 아이들이 어릴 때 이들과 적당히 접촉할 수 있도록 하여 면역 세포를 미리 학습시키는 거죠. 주변이 지나치게 깨끗하면, 면역계가 할 일이 없어져 자기 자신을 공격한다는 위생 가설을 근거로 하는 교육 방식입니다. 할 일이 없는 면역계란, 사전에 미리미리 쓸모있는 일거리를 주지 않으면 쓸모없는 일만 벌이는 타성에 젖어버린 기획부서와도 같달까요. 물론 정작 저는 손을 씻는 게 귀찮았다기보다도, 손을 씻지 않은 상태를 엄마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스릴이 좋아서 그랬던 것이지만요. 아, 아시겠지만 제가 주식 투자를 조금 하는데 위험선호 경향이 있는 편이거든요. 그 또한 이 시기에 자연스레 생겨난 성향이 아닐까도 싶고요. 하하, 물론 조크입니다. 하지만 농담만은 아닌것이,
요즘같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기에는 차트도, 분석이랄 것도 없으니까요. 롱이든 숏이든, 운칠기삼에 잘 잡는 사람이 버는 거죠. 투자의 시대라기보다는 투기의 시대랄까. 아아, 그나저나 이야기가 너무 새어버렸군요. 어디까지 했죠? 아, 그렇죠. 알레르기. 아니, 그것보다도 이제 정말 제 고양이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네요. 제가 말이 너무 많죠? 말이 많은 와중에도 계속 말이 많다 보니 말이 끊기지를 않습니다만, 아무쪼록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들어주시고 계시다는 점에 새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진심으로요.
자, 저희 고양이는 말이죠, 2살이 되던 해에 파양되었습니다. 젊은 부산 남자 둘이 서울로 상경하여 좁디좁은 오피스텔에서 키우던 작고 마른 러시안블루였고요. 이름은 '꿀이'였습니다만, 그들이 왜 그런 이름을 지어줬는지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본인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이 두 부산 남자들에게 서울 생활이 꿀처럼 달달하진 않았던 걸까, 하던 일을 접고 도로 부산으로 내려간다고 하더군요. 이로 말할 수 없이 쓸쓸한 표정으로요. 하지만 왜인지 고양이는 절대로 데려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고양이를 케이지에서 꺼내서 직접 볼 수는 없는 걸까요?" 저의 물음에 두 남자는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더니, 굳게 닫힌 케이지를 난처하게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보여주고 싶지만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고양이가 너무 분노한 상태여서 케이지에서 꺼내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고양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케이지에 갇히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몰랐습니다. 기껏해야 겁먹은 개처럼 으르렁거리거나 야옹야옹 울 줄 알았죠. 창살 안을 들여다보니,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온몸의 털을 바짝 세운 회색 털뭉치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채 키약! 소리를 내고 있더군요. 반쯤 미친 채 궁지에 몰린 하수구쥐 같았습니다. '이딴 게... 고양이?'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양이를 앞에 두고도 두 남자의 아이폰 사진으로 생김새를 확인해야만 했죠. 그런데 사진 속 고양이는 우아한 청푸른 빛의 벨벳 털을 뽐내면서, 목에는 귀여운 핑크색 리본을 두른 채 창가에 얌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 길로 입양을 결정했습니다. 케이지 안의 저 사타닉한 게 무엇이든 간에 말이죠. 2살짜리 러시안블루, '꿀이'를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고양이는 케이지 가장 안쪽 구석에 웅크린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고 낯설고 무서웠겠죠. 생각해보세요. 나랑은 전혀 다르게 생긴 웬 이족보행 생물 둘이 서로 부모 행세를 하며 나를 들었다, 놨다, 먹였다, 씻겼다, 놀아줬다, 심지어는 화장실까지 치워주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이동식 감옥에 꽁꽁 가두어 또 다른 낯선 이족보행 생물에게 나를 넘기고, 엔진 소리가 요란한 기계에 태워 목적지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방지턱을 넘고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간다고요. 무섭지 않습니까? 난 무섭습니다. 생각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군요. 녀석이 기절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특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케이지를 열어두기만 하고 녀석과 데면데면하게 지냈습니다. 그게 올바른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몹시 만지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맛있는 간식을 잔뜩 먹여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고양이가 없는 듯이 지냈죠. 고양이가 있는데 없는 것처럼 지내기는 솔직히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대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니까요. 인간의 관성대로 말을 걸고, 좋아하는 걸 주고, 눈을 맞추려 애쓰죠. 상대를 내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행위들. 하지만 고양이에게는, 아니 고양이든 개든 인간이 아닌 모든 종류의 생물에게는 인간의 관성이나 감정을 대입하지 않는 쪽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겁먹은 동물에겐 인간이 무심코 던지는 시선과 거리를 좁히려는 호의가 포식자의 추적과 같이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마침내 고양이가 먼저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은 것은 일주일쯤 뒤였습니다. 그날 저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의 인스턴스 던전을 가기 위해 파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트롤 드루이드였어서 아무도 끼워주지 않았죠. 대기는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고양이의 촉촉한 코가 의자에 앉아 있는 내 종아리에 슬쩍 닿았습니다. 놀라 내려다보자, 호기심 어린 동그란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정과 고마움이 밀려들더군요. 그 순간 스피커에서 웅장한 신호음이 터졌습니다. 때마침 파티가 구해진 것입니다. 그때 '꿀이'에게 운명과도 같은 새 이름을 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늘부터 네 이름은 드루(Druid)야."
어떻게, 더 이야기해 드릴까요? 이야깃거리는 늘 있죠. 그로부터 12년간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네네, 물론이죠. 아, 저희 고양이 사진 보실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