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og-writing # 종이 한 장 차이 나는 어느날 탁월하게 돌아버린 사람인 "G" 와 함께 "살면서 느낀 위기감" 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농구를 좋아하는 G는 대학교 코트에서 마찬가지로 농구를 좋아하는 다니엘 헤니와 자주 마주쳤다고 했습니다. 다니엘 헤니는 인물, 키, 인성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완벽한 남자였고, 살면서 그 어떤 위기감도 느껴본 적이 없는 G는 다니엘 헤니를 보며 처음으로 '아, 이건 좀 위기다'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그 위기감의 근원이 대체 무엇이냐며 곧바로 항의하고 싶었지만, 일단 참고 G의 이야기를 계속 듣기로 했습니다. --- G는 위기감을 극복하기 위해 민소매를 입고 있는 다니엘 헤니의 겨드랑이에 주목하였습니다. 저 완벽해 보이는 남성은 분명히 겨드랑이에서 지독한 냄새가 날 것이다, G는 그 믿음에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믿기로 작심하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G는 악착같이 믿었습니다. 다니엘 헤니의 겨드랑이에서는 악취가 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결국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G는 농구 코트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위기를 이겨낸 것입니다. 나는 G에게 우리 사회가 그것을 '정신 승리'라고 부르기로 약속하였다고 알려주었습니다. G는 부들부들 떨었지만 더이상 항변하진 않았습니다. 다음으로는 나의 위기감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습니다.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던 날, 나는 촬영장에서 [ 이름은 모르지만 TV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엄청 예쁜 그 여배우 ]를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순간 시키지도 않은 자기방어 기제가 내 안에서 저절로 작동하더니 '그녀는 그녀대로! 나는 나대로 예쁘다!'라는 마음속 안내 방송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다음과 같이 읊조리고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쁘다! 아름답다! 사람이 아니다!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녀에게 영생의 물약을 먹여서 영원토록 저 미모를 찬미하고 싶다!' G가 다니엘 헤니의 겨드랑이와 사투를 벌였다면, 나는 이미 무릎을 꿇고 그녀를 숭배하고 있던 것입니다. 정신 승리를 압살하는 아름다움을 눈앞에서 목도한 사람에게, 위기감 따위는 숨이 붙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나는 G에게 말해주었습니다. > 극도의 아름다움 앞에서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더라. 세상은 지극히 공평하더라. 아름다움 위에 더 큰 아름다움이 있고, 그 위에 더더욱 큰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더더더더욱 큰 아름다움이, 기타 등등(etc.). 즉, 이와 같이 아름다움에는 끝이란 것이 없다. 그 무한한 층위 내에서 정신 승리란 무의미한 싸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대로 예쁘다" 혹은 "다니엘 헤니를 보며 위기감을 느꼈다"는 생각의 근원은, 어쩌면 천상계와 내가 위치한 층의 차이가 종이 한 장 차이여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G에게 넌지시 전하였습니다. G는 나의 현실 감각이 꾸준히 없는 점에 대해서는 가히 칭찬할 만하다며 감탄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종이 한 장의 두께와 재질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봐야 한다고 조심스레 제안하였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저항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G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생각의 근원은 이미 분명한 현실 감각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나의 설명을 들은 뒤로 G는 왠지 모르게 설득되었습니다 초절세 미남·미녀가 위치한 천상계와 G나 내가 위치한 층 사이에는 종이 한 장만큼의 간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고자 했던 첫 번째 지점은 우리가 그 한 장의 종이를 '펼쳐놨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종이를 한 번 접을 때마다 두께는 2배가 되고, 면적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일반적인 A4 용지나 신문지 같은 종이를 손으로 접는다면 보통 7~8번이 한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종이의 크기와 두께, 그리고 가해지는 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수치입니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인 한계를 깬 사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02년, 브리트니 갤리번(Britney Gallivan)이라는 한 여고생이 약 1.2km 길이의 아주 얇은 화장지를 사용하여 혼자서 12번 접는 데 성공했습니다. 혼자서 말입니다. 이어서 2012년, MIT 학생들은 약 4km에 달하는 거대한 종이를 이용해 총 13번을 접어 세계 기록을 경신한 이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토대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0.1mm(100μm) 두께의 일반적인 복사지나 메모지를 기준으로 종이를 무한히 접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계산해 보면 놀라운 결과가 나옵니다. 42번을 접으면 두께가 약 44만 km가 되어 달까지 닿을 수 있습니다. 103번을 접으면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보다 두꺼워질 수 있습니다. 즉, '종이 한 장의 차이'란 이토록 무한한 가능성과 전혀 범접할 수 없는 불가능을 동시에 논하는 수치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관측 가능한 아름다움을 외면하고 고통스러운 정신 승리의 지평선 너머로 보내버리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일 수 있습니다. 다니엘 헤니의 겨드랑이 악취를 필사적으로 상상하거나 나는 나대로 예쁘다고 되뇌는 과정은 우리의 관찰을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종이 한 장 차이란, 매끄러운 평면 위에서의 위안이 아니라 이미 수십 번을 겹쳐 접어버린 지독한 집념의 두께인 것입니다. G가 믿었던 겨드랑이의 악취나 내가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중얼거렸던 주문은, 종이를 최소 42번 접어 올려보아야 겨우 닿을 수 있는 달과의 거리를 가늠해 보는 처절한 기하급수적 도약과도 닮아 있었던 셈입니다. 우주만큼 거대해진 그 간극을 단지 종이 한 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그 종이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마지막 현실 감각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종이를 접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G는 겨드랑이를 자신있게 활짝 펼친 채 농구 코트를 누볐고, 나는 NG 없이 엑스트라 촬영을 무사히 마친 뒤 짭짤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남은 것은 상상 속 겨드랑이 냄새와 눈물로 접은 상상의 종이 뿐이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