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og-writing # 로우 슈거 돼지바 나는 최근 기분학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식단을 조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라면 사족을 못 쓰는 달콤한 것들, 특히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끊어내고 있었으므로 다른 것보다도 정제당에 대한 갈망으로 몹시 괴로워하는 중이었습니다. 오늘은 눈앞에 초콜릿이 날아다니는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날개가 달린 타조알만 한 아몬드 초콜릿이 팅커벨처럼 파닥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날갯짓이 일 때마다 코코아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나는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소설책을 소리 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클로치코프에게는 지금 담배도 차도 없고, 고작 설탕 네 조각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문득 설탕 네 조각이 남아 있는 클로치코프가 부러웠습니다. 설탕 네 조각이라니. 여섯 개의 면을 네모반듯하게 깎아 만든 하얀 각설탕이겠죠. 나는 각설탕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고 앞니로 조금씩 갉아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굶주린 시골 쥐처럼 말입니다. 아삭아삭 소리가 나도록 갉아 낸 설탕 알갱이를 혀 밑에 밀어 넣고 살살살 녹여 먹는 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소란이 아득히 멀어질 텐데요. 이웃들이 주차 문제로 난투극을 벌인다 해도, 옆집에서 느닷없이 가스가 폭발하여 최소 세 가구의 유리창이 박살 난다고 해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아아, 위험합니다. 갈망이란 이토록 위험한 것입니다. 소설책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일어나서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닐기 시작했습니다. 날개 달린 아몬드 초콜릿이 계속해서 성가신 파리처럼 쫓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끈질긴 녀석을 쫓아낼 수 있을까?' 나는 읽지는 않고 잔뜩 쌓아두기만 한 온갖 색상의 책등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추측과 논박 1』에는 각설탕이나 초콜릿 이야기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민트색 표지에 검은색 하드 커버, 흰 페이지의 조합은 민트 초콜릿 칩 프라푸치노를 연상시킵니다. 아아, 정통 민초파인 나에게는 안 될 말입니다. 다른 책으로 눈을 돌립니다. 『언어의 온도』는 흰 표지에 보라색 글씨로 쓰여 있습니다. 초콜릿이 전혀 연상되지 않는 디자인입니다. 나는 비로소 안심하고 책을 집어 들고 뒷면의 소개 글을 읽습니다. "사랑은, 핑계를 댈 시간에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문턱을 넘어가며 서로에게 향한다."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해졌습니다. 깨달음은 늘 번개 같은 섬광을 번쩍이며 머릿속에 들이닥치는 법입니까요. 아아, 그렇구나. 사랑은, 아아, 사랑은. 핑계를 댈 시간에 문턱을 넘어가야 하는 것이구나. 나는 책을 내팽개치고 서둘러 재킷을 챙겨 입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아이스크림 가게 문턱을 넘어야 하니까요. 현관문을 박차고 헐레벌떡 뛰쳐나갔습니다. 그러자 나의 뒤통수에서 파닥거리던 아몬드 초콜릿이 퐁! 소리와 함께 뭉게구름 사이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금부터 - 「식단 중에 초콜릿에 대한 갈망으로 이성을 잃은 내향형 인간」 을 위한 완벽한 처방을 하겠습니다. 그것은 - 「아무도 없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단 하나 남은 로우 슈거 돼지바」 입니다. 아니, 로우 슈거 돼지바라니. 잠깐 동안 나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것이 가당키나 한 네이밍일까요? 부장님의 혈당 대신 혈압을 올리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기획자가 제정신일 리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 대단했을 프레젠테이션 장면을 잠시 상상해 보았습니다. (어두컴컴한 콘퍼런스 룸 안에는 빔 프로젝터의 흰 불빛만이 반짝이고 있다. 이제 기획 2팀의 젊은 피, T가 냉소적인 반무테안경을 추켜올리며 힘 있는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한다) "여러분, 대한민국 아이스크림 시장의 '클래식'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네, 맞습니다, 부장님. 1983년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사랑받아 온, 우리 롯데웰푸드의 자긍심, '돼지바'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전 국민에게 익숙한 돼지바가 아닌, 전혀 새로운 돼지바를 소개하려 합니다." (T가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자, 아무것도 없는 검은 화면에 0이라는 숫자가 나타난다) "현재 디저트 시장의 키워드는 명확합니다. 바로 제로 슈거입니다. 컨슈머들은 이제 맛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몸에 미안하지도 않은 간식을 원합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어떻습니까? 특히 우리 돼지바의 메인 아이덴티티는 초코 크런치와 스트로베리 시럽입니다. 네, 헤비하죠. 돼지바처럼 헤비한 해피니스를 주는(*부장님의 피식하는 소리*) 프로덕트일수록 건강과는 거리가 멀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기획 2팀,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기회를 보았습니다. 가장 돼지 같은 맛을, 가장 라이트한 방식으로 딜리버리하자.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T가 잠시 뜸을 들이자, 콘퍼런스 룸 안에 일순간 긴장이 감돈다.) "소개합니다. 로우. 슈거. 돼지바." (화면이 밝아지며 연미복을 입은 돼지가 나타난다. 돼지가 지휘봉을 들고 마술을 부리듯 요리조리 휘두르자, 초코 크런치로 덮여 있는 3D 아이스크림이 등장한다. 지휘봉에서 무지갯빛 빔이 발사되고 아이스크림의 단면이 잘려 나가는 애니메이션 재생. 아이스크림 중앙에 들어 있는 빨간색 딸기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아이스크림은 파스텔 색조의 연하늘색 배경을 기본으로 하여 시원한 느낌을 주는 포장지 안으로 쏙 들어간다. 이어서 두꺼운 폰트의 "돼지바" 타이포그래피와 함께 분홍색 말풍선이 퐁! 하며 나타나고, 그 안에 작은 흰색 글씨로 "저당"이 입력된다.) "슬라이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번 제품의 코드는 '완벽한 대체'입니다. (*부장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기 시작*) 겉면의 바삭한 초코 크런치, 그리고 속의 딸기 시럽. 이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어떻죠? (*부장님이 고개를 가로저음*) 네, 맞습니다. 그건, 돼지바가 아니죠." (T가 리모컨을 누르자 오리지널 돼지바 제품 사진이 화면 왼쪽에서 날아오더니 저당 돼지바 옆에 나란히 자리한다. 연미복을 입은 돼지가 좌-돼지바 / 우-저당 돼지바를 이쪽저쪽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애니메이션) "저희는 수십 번의 테스트 끝에 알룰로스 딸기 잼과 저칼로리 초코 코팅 기술을 적용해, '눈 감고 먹으면 일반 돼지바와 구별할 수 없는 수준'까지 구현해 냈습니다. 익숙함은 유지하되, 구성 성분만 혁신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T는 이제 콘퍼런스 룸 안의 분위기를 장악했다는 확신이 든다. 그는 이전보다 더 힘 있는 말투로 프레젠테이션을 이어 나간다) "우리 로우 슈거 돼지바의 주 타깃, 명확합니다. 관리에 진심인 2030 세대입니다. 기존의 충성 고객층은 유지하면서, '살찔까 봐' 우리 제품을 멀리했던 잠재 고객들, " (T가 다시 한번 리모컨을 누르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의 냉동고 앞에서 서성이는 욘킴의 사진이 나타난다) "다시 우리 냉동고 앞으로 불러 모으겠습니다. 즐거움은 그대로, 부담은 Low. 대한민국 대표 아이스크림의 새로운 진화, "저당 돼지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콘퍼런스 룸 안의 사기가 고조되며 모두가 기립하여 박수갈채를 날린다. T는 뭉클해진 마음으로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린다) 박수 소리의 환청이 사그라들 무렵 나는 「로우 슈거 돼지바」 를 거의 다 먹은 상태였습니다. 먹는 내내 눈을 감고 에어팟은 노이즈 캔슬링을 하여 감각을 차단한 채 그 맛을 신중히 분석했습니다. 기획 2팀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눈을 감고 먹으면 일반 돼지바와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새콤달콤한 시럽에서도, 바삭바삭한 초코 크런치에서도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어느덧 갈망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저당 돼지바'라는 이름의 문턱은 내가 넘을 수 있는 가장 자애로운 경계선이었습니다. 소설 속 각설탕을 부러워하며 굶주린 시골 쥐처럼 앞니를 세우던 굶주린 자아도 비로소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내팽개쳤던 책,『언어의 온도』를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곱씹어 읽었습니다. "사랑의 본질이 그렇다. 사랑은 함부로 변명하지 않는다. 사랑은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말하거나 방패막이가 될 만한 부차적인 이유를 내세우지 않는다. 사랑은, 핑계를 댈 시간에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문턱을 넘어가며 서로에게 향한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혀끝에는 바삭한 초코 크런치와 딸기시럽의 달콤한 여운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 Outgoing Link [Brunch: 로우 슈거 돼지바](https://brunch.co.kr/@yonkim/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