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세탁소의 여사장님은 키가 자그마하고 푸근한 몸매의 할머니입니다. 곱실거리는 파마머리는 손질을 하지 않아 늘 부스스해서 꼭 옷 보푸라기와 실밥을 모아 푹신하게 얹어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소매가 팔꿈치 언저리까지 오고 품이 넉넉한 샐먼 핑크색 티셔츠를 즐겨 입는데, 보기만 해도 눈이 편안해지는 U자형 곡선으로 목이 늘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바지만큼은 늘 새것 같은 나이키 트랙 팬츠이거나 등산용 아웃도어 팬츠입니다. 그녀의 여유 넉넉하고 편안한 아우라로 짐작건대, 퇴근 후에 트랙을 달리거나 등산을 하기보다는 사우나에서 녹진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일 것이란 생각입니다. 아, 어쩌면 그녀는 일상생활에서 착용감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종의 고프코어(Gorpcore) 룩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이면 어김없이 세탁소 문을 열고 땅거미가 지고서야 문을 닫는 고프코어 룩의 그녀. 느긋한 외양과는 달리, 그녀는 혼자서 세탁, 수선, 다림질까지 모두 커버하는 전천후의 현역입니다. 바스락거리는 얇은 비닐에 꽁꽁 싸매 천장에 매달아 둔 고치 같은 옷가지들 사이로, 그녀가 늘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연, 기동성이 좋은 트랙 팬츠를 유니폼으로 선택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인 거죠.
동네 주민인 제가 대략 통계를 내 보았을 때, 세탁보다는 수선을 맡기는 단골손님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허리를 저만큼 줄여주세요, 기장을 이만큼 잘라주세요, 하고 이렇게 저렇게 주문하면 느긋한 할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속도감 넘치는 퍼포먼스가 펼쳐집니다. 퉁퉁한 손으로 눈금이 다 닳아 없어진 낡은 줄자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착, 착 대고, 초크로 표시선을 긋고, 시침핀을 한 두 개 꽂습니다. 마치 정갈한 종이접기를 하듯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동작들입니다. 재단을 마치면 다시 느긋한 무드로 돌아와 이름과 전화번호를 묻고, "내일 오셔" 또는 "이틀 뒤에 오셔"라고 말합니다.
벽에는 100개가 넘는 미싱용 실타래가 들쭉날쭉하게 걸려 있는데, 보편적인 바지와 셔츠에서 볼 수 있는 색상들의 실입니다. 검은색, 차콜색, 아이보리색, 흰색, 낙타색, 쥐색 등등 말이죠. 어떤 건 심지가 다 보일 정도로 홀쭉하고 어떤 건 50cm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뚱뚱합니다. 뚱뚱한 실타래는 저런 색의 실을 쓰는 옷도 있나? 싶은 생소한 핑크나 라일락 보랏빛입니다.
실타래 아래 놓인 그녀의 미싱은 황동색의 공업용 미싱으로, 바늘을 들어 올리는 다이얼에 까맣게 손때가 타 있습니다. 그녀는 드르륵거리는 기관총 소리가 나는 공업용 미싱을 썩 과감하게 다룹니다. 마치 오래된 악기에서 제대로 된 소리를 뽑아내려는 장인과 같은 손길로 말이죠. 눈이 왕사탕만 하게 보이는 두꺼운 와인색 돋보기안경 뒤로 예리하게 반짝이는 눈빛과 미간에 깊게 파인 삼지창 모양의 주름만으로도 그 터프했을 세월의 구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손도 빠르고 솜씨도 좋습니다. 시간을 어긴 적도, 옷을 너무 짧게 줄이거나 망가뜨린 적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베테랑. 헹거에는 수선을 마치고 보풀 하나 없이 각을 잡아 다린, 마치 새 옷 같은 재킷과 원피스와 바지가 줄지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나로 하여금 프라다를 입는 악마들의 세계 속 숨은 백스테이지를 상상하도록 만드는 인물입니다.
옷가지를 한 아름 들고 그녀를 찾아갈 때의 또 다른 즐거움은 바로 그녀가 키우는 개, 뭉치를 만나는 일입니다. 뭉치는 다 자란 말티즈보다는 조금 크고 앞 집의 진돗개보다는 훨씬 작은 비숑 프리제로, 잘 먹어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몸집에 약간 꾀죄죄하지만 하얀 털이 곱슬곱슬하고, 둥그스름한 얼굴에는 까만 단추 같은 눈과 코가 달린 귀여운 개입니다. 바늘과 실, 알록달록한 옷가지들 사이에서 툭 불거져 나온 통통한 목화솜뭉치 같습니다.
뭉치는 세탁소의 유리문 뒤에서 신문지를 배 아래 깔고 엎드려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합니다. 그러다 누군가 다가오면 둥글둥글한 머리를 왼쪽 오른쪽으로 갸웃거리면서 '들어올 거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뭉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깨 같은 발톱이 삐져나온 앞발을 쭉 뻗고 엉덩이를 하늘 높이 치켜드는 요가 자세로 기지개를 켭니다. 그리곤 나의 신발과 바지 밑자락 사이를 신중하게 두리번거립니다. 손바닥을 보여주면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 꼼꼼하게 훑는데, 축축한 까만 코를 슬쩍슬쩍 대가면서 따뜻한 콧바람을 훙,훙 하고 뱉습니다.
뭉치는 순하고 얌전한 개입니다. 문이 열린다고 해서 뛰쳐나가지도 않고, 낯선 사람에게 멍멍 짖거나 사납게 으르렁 거리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어쩐지 하루 종일 하네스를 매고 있는데요. 알고 보니 뭉치를 종일 세탁소에 묶어두는 용도가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녀석을 몹시 귀여워하여 너도나도 데려가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용실 사장님 내외가 뭉치를 데려간 날이면, 미용실의 시원한 대리석 바닥에 무방비하게 누워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뭉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치킨집 아주머니가 뭉치를 데려간 날이면, 아예 주저앉아 꼬리를 바닥에 탁탁 치며 닭다리 한쪽을 얻어먹고 있기도 합니다. 뭉치는 골목에서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고 있기도 하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면 구멍가게 차양 아래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어르신들의 발치에서 심드렁하게 엎어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할머니의 퇴근 무렵이 되면 온 동네 사랑이 듬뿍 묻어 조금 꾀죄죄해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세탁소로 돌아오는 것이죠.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세탁소 안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엎드려 있던 뭉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오늘은 맡길 옷이 없지만, 짠! 운동 가방 앞주머니에 강아지용 간식을 챙겨갔죠. 문고리를 잡자 뭉치가 느릿느릿 뒷걸음질 치며 비켜줍니다.
세탁소 할머니는 미싱 다이에 앉아 파란색과 크림색이 섞인 타탄체크 패턴의 숄을 이리저리 만지작 거리고 있었습니다. 두꺼운 돋보기안경 뒤의 예리한 두 눈으로는 숄에 달린 술을 한가닥 한가닥 신중히 살피면서요. 미싱 페달에 올려둔 오른발엔 가벼운 매쉬 소재의 워킹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뭉치 보러 왔어요. 간식 줘도 괜찮아요?"
"으응 그래요, 뭉치 좋겠네."
뭉치가 조그마한 주둥이를 신나게 짭짭거리며 강아지용 간식을 먹는 동안 드르륵 거리는 미싱 위로 숄이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나는 그 평화로운 배경 안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선풍기 바람에 땀을 조금 식혔습니다. 문득 '아, 온 김에 러닝화 세탁을 맡겨야겠는 걸.', 하는 생각이 들어 가방을 열자 뭉치가 혹시 간식을 더 주나 싶었는지 두 발로 일어나 뒤뚱거리며 "멍!" 하고 짖었습니다. 러닝화를 꺼내면서 간식도 조금 더 주었습니다.
러닝화를 받아 든 할머니는 여느때와 같은 느긋한 목소리로 "내일 오셔." 하 말합니다. 뭉치는 단추 같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봅니다. '내일 또 간식 줄 거야?' 하는 표정. 내일은 새것 같은 러닝화와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귀여운 개를 함께 만나는 날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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