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og-writing # 동네산책(4) 말 없는 백반집 사장님/1 어느 동네에나 하나 내지 둘씩은 '가정식 백반집'이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이웃해 있기도 합니다. 커피숍 옆에 또 커피숍이 있다든지, 미용실 옆에 또 미용실이 있는 것과는 달리 서로를 소모하는 이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왼쪽 집은 제육볶음이 맛있고, 오른쪽 집은 생선구이가 맛있는 식으로 서로 상생하는 이웃이랄까. 또는 해바라기 그림이 걸린 왼쪽 집이 토요일에 쉰다면, 십자가가 걸려 있는 오른쪽 집은 일요일에만 쉬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할 백반집은 점심에 찌개 정식을 파는 고깃집과도 이웃해 있고, 포장 전문 도시락집과는 10m, 해물 로스와 된장찌개 집과는 20m 남짓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사를 온 직후부터 일주일간 나는 모든 집에서 점심을 먹어보았고, 각자 치열하게 맛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단골이 된 집은 단 한 곳이지만요. 가게로 전화가 오는 것이 싫어 간판에 전화번호를 적어두지 않았다지만 어쩐지 네이버 지도에는 전화번호를 적어둔 백반집, 쉬는 이유를 전혀 알려주지 않은 채로 수요일이면 칼같이 문을 닫아버리면서도 토요일과 일요일, 심지어 공휴일에는 여는 백반집. 생선구이 집도 아닌데 출중한 생선구이를 내놓고 감자탕 집도 아닌데 뼈해장국이 맛있는 백반집. 이 글은 그곳에 바치는 작은 헌정사입니다. --- 허름한 외관, 365일 열어두는 듯한 열린 문 안쪽으로 들어섰으나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습니다. 4개 남짓한 테이블에 낡은 선풍기가 느릿느릿 돌아가고, 손님은 없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비쩍 마른 아저씨 한 명이 앞치마를 두른 채 가장 안쪽 테이블에 앉아 야구 중계가 한창인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하늘색 소쿠리에 산더미처럼 쌓인 콩나물을 다듬으면서요. 지금부터 그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브레이크 타임인 걸까? "식사 돼요?"라고 조심스레 묻자, 사장님은 콩나물을 내려놓더니 말없이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냈습니다. 나의 입장을 허용하는 조용한 사인이었죠. 안심한 나는 입구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벽에 걸린 검은색 보드 위, 현란한 형광색으로 적힌 메뉴를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가운데에 **차림상**이라 적힌 아래로 파이($\pi$) 형태의 선이 그어져 있고, 세로선을 기준으로 세 개의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보통의 백반집이라면 본질적인 형태와 조리 방식에 따라 직관적으로 메뉴를 묶습니다. 세 개의 카테고리면 볶음류, 찌개류, 주류, 다섯 개의 카테고리면 찜류, 구이류, 볶음류, 찌개류, 주류와 같이 말이죠. 제육과 오징어는 엄연히 서로 다른 재료임에도 '국물 없이 불에 볶아낸 것'이라는 속성의 유사성에 따라 '볶음류'라는 하나의 형태로 통합됩니다. '찌개류' 역시 뚝배기에 국물이 자작하게 끓여진 것들을 유사성으로 묶은 결과입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는 서울시 어딘가의 백반집과 제주도 서귀포시 어딘가의 백반집 메뉴판 구성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데자뷔(기시감)를 촉발할 만큼 닮아 있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대한 심리학자들에게 다소 실례될 수 있으나, 나는 여기서 과감히 '게슈탈트(Gestalt)'를 언급하겠습니다. 인간은 무작위의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하나의 조직된 전체로 인식한다는 개념입니다. 식탁 위에 두부 몇 조각, 토막 난 호박, 돼지고기, 고춧가루와 물이 각각 따로 놓여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곳엔 맛도, 의미랄 것도 없습니다. 그냥 식재료의 나열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뚝배기 안에서 한데 어우러져 보글보글 끓는 순간, 우리는 야만인에서 문명인으로 거듭납니다. 사냥해 온 멧돼지를 뜯어 먹다가 허겁지겁 밭으로 달려가 깨진 호박을 주워 먹는 식으로 개별 재료의 맛을 따로 획득하는 게 아니라, "찌개"라는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받아들이는 거죠. 그로부터 백반의 근간을 이루는 찌개의 존재론적 의미가 탄생합니다. 또한 제육볶음, 김치찌개, 소주를 개별 메뉴로 보지 않고, "이모, 여기 제육 하나, 김치 하나, 참이슬 후레쉬 하나요."라는 통합적인 주문을 통해 "갓벽한(OMG this is perfect) 반주 한 상"이라는 전체로 재창조해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뇌가 메뉴를 소비하는 게슈탈트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개별 재료들의 합보다, 개별 메뉴들의 합보다, 그것들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차림이라는 경험의 가치가 훨씬 더 큽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핵심 명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바로 이런 뜻인 거죠. 반박하려거나 비난하려는 손가락을 잠시 넣어두고 내 말을 계속 들어주십시오. 중요한 것은 이 백반집의 메뉴판은 학계의 정설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메뉴를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나눠 놓은 것일까가 한눈에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유사성의 법칙(Law of Similarity: 비슷한 것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으려는 경향)도, 폐쇄성의 법칙(Law of Closure: 불완전한 정보를 완성된 형태로 인식하려는 경향)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혼란스러운 메뉴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나는 이 가게가 [비싼 것/일반적인 것/마실 것] 으로 메뉴를 나누어 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부터 이 가게의 메뉴판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좌측의 [비싼 것] 카테고리의 코다리 우거지 찜은 약 3만 8천 원, 뼈다귀 우거지 탕은 중짜 2만 7천 원, 대짜 3만 4천 원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우거지를 중심으로 해물과 육류를 나누고 찜과 탕이라는 장르까지 구분한 알뜰함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습니다. 복잡한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효율적 인포그래픽(Infographic)은 아니었지만, 우거지를 테마로 한 메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가운데 [일반적인 것] 카테고리에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와 같이 무난한 찌개 메뉴와 더불어 반건조 생선구이, 뚝배기 불고기, 제육볶음과 잔치국수까지 함께 하면서 가격대는 1만 원 이내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측의 [마실 것] 카테고리에는 소주, 맥주, 음료수, 그리고 파란색 글씨로 '물은 셀프(Self)'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물에는 가격이 적혀 있지 않으니, 여기까진 모두 마실 것으로서 지극히 합리적인 묶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실 것] 카테고리의 맨 아래에는 어쩐지 공기밥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다시금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공기밥은 사실 코다리 우거지찜 옆에서도, 김치찌개 옆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감초 같은 전천후 멀티플레이어인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생적 한계 탓에 메인 리그의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마실 것' 벤치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예비 선수 같았습니다. 아, 하지만 어쩌면. 아주 맛있는 찌개를 먹을 땐 결코 한 공기로는 끝나지 않듯이. 한국인 특유의 식각(食覺)에 의해 밥을 마시듯이 들이킨다는 표현도 존재하니, '마실 것' 중에서도 MVP(Most Valuable Player)라는 의미로 이름을 올려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최선의 노력을 기반으로(Best Effort Basis) 시스템 속에 숨겨진 메타포를 이해하자, 혼란이 다시금 사그라들었습니다. 메뉴 파악이 끝난 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사장님을 호출하였습니다. 콩나물을 다듬으며 야구를 보던 사장님은 안경 너머로 흘깃 시선을 주었습니다. "제육 하나요." 사장님은 "제육 하나요."라는 짤막하고도 즉각적인 반사와 함께, 콩나물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정석적이었습니다. (일전의 동네산책 시리즈(1)(2)(3) 에서도 종종 언급하였습니다만, 나는 무엇이든 정석적인 태도로 임하는 사람들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은 거대한 쟁반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작은 그릇에 담긴 콩나물무침, 어묵볶음, 아삭이고추 한 개와 같은 무난한 녀석들이 차례로 내려진 뒤로 반찬계의 탑티어, 알감자조림(4알)이 등장했습니다. 아아, 정말이지. 나는 알감자조림 하나만으로 밥 한 솥을 먹을 수 있단 말입니다. 나의 은밀한 취향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사장님은 공기밥도 미리 함께 주었습니다. 사장님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도 전에, 나는 참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알감자조림 한 알을 집었습니다. 아닙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알감자가 너무 동그랗고 미끄러웠기 때문에 젓가락 두 개의 균형을 맞추어 '집었다'기보다는 젓가락 한 짝은 창(spear)처럼 찔러 넣고, 다른 하나는 지지대처럼 아래를 받쳐서 들었습니다. 알감자조림을 좋아하는 상식적인 어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동작일 것입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갈색 조림장을 잔뜩 머금은 알감자 한 알을 조심스레 입안에 넣었습니다. 얇고 팽팽한 껍질이 톡 터지며 속에 갇혀 있던 따끈한 열기와 짭조름한 내음이 입안 가득 번져나갔습니다. 부드럽게 뭉개트린 속살은 포슬포슬하면서도 밀도 높게 감겨오며 감자 특유의 텍스처를 완성했습니다. 목을 타고 넘어간 뒤에도 은은한 물엿의 단맛과 통깨의 고소함이 남아 자꾸만 다음 한 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이 조림장, 대체 무슨 마약을 넣은 것인지 당장 알려주기 바랍니다. 나는 공기밥의 뚜껑을 열지 않은 채 라틴 스타일의 마라카스(Maracas)처럼 경쾌하게 흔들어주었습니다. 아무리 차가운 도시 여자라 할지언정, 극한의 내향형 인간이라 할지언정, 참을 수 없는 반찬을 내어주는 백반집에서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신성한 의식(Ritual)이라는 점. 누구나 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공기밥 뚜껑을 열자마자 마치 블랙홀처럼, 알감자조림이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왔습니다. 흰 쌀밥과 알감자조림의 양념이 융합하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아, 위험했습니다. 위태로웠습니다. 이대로라면 곧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아---, 이대로라면 곧... 정말이지 곧...! "저기 사장님, 알감자조림 좀 더..." 사장님은 다시 한번 흘깃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가와 텅 빈 반찬 그릇을 가져갔습니다. 아, 안 될 말입니다. 나답지 않군요. 처음 찾은 백반집에서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반찬 리필이라니. 처음 보는 손님이 응당 지녀야 할 미스터리한 이미지가 송두리째 뿌리 뽑히고 적나라한 입맛을 들킨 취약한 상태가 된단 말입니다. 어쩐지 물이 켜서, 애꿎은 물만 한 컵 들이키고 말았습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장님은 아무 말 없이 반찬 그릇을 내려놓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아아, 그런데. 그가 놓고 간 것은 반찬 그릇이 꽉 차도록 쌓아 올린 알감자조림(8알)이었습니다. 낯선 손님에게 무려 처음의 두 배(2X)라는 압도적인 양으로 응답해 준 것입니다. 아무 말 없이 수북이 놓인 갈색의 따스한 동그라미들이 어쩐지 나의 마음 한 켠을 넉넉하게 채워주고 있었습니다. 이제 제육볶음을 향한 나의 기대감은 허름한 외관과 혼란스러운 메뉴판의 저항선을 모두 뚫어버리고 천장이 보이지 않는 상승 랠리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 # 동네산책(4) 말 없는 백반집 사장님/2 지금부터 제육볶음에 대한 나의 깊은 고찰을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제육이란 메뉴는 백반집이든, 휴게소든, 급식이든 크게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로 제공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육덮밥'의 제육입니다. 매콤달콤한 와중에 살짝 수분감 있도록 조리듯이 볶아낸 제육볶음을 하얀 쌀밥 위에 넉넉히 얹어내는 유형으로, 비벼 먹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흥건 또는 자박자박 정도의 텍스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는 '제육쌈밥'의 제육입니다. 상추 또는 깻잎과의 베리에이션을 전제로 하는 메뉴이기 때문에 제육덮밥의 그것보다는 약간 더 수분감을 덜어낸 느낌으로, 그리고 채소가 양념 맛을 감쇄하는 것을 감안하여 조금 더 자극적인 양념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촉촉한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육볶음'의 제육입니다. 코끝을 강하게 찌르는 철판의 냄새, 그리고 뜨거운 불길이 고기 표면을 스치며 남긴 분명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의 흔적. 고기의 가장자리는 센 불이 직접 닿아 거뭇거뭇하게 타들어 가며 과자처럼 크리스피하게 구워졌고, 그 위로 캐러멜라이즈된 매콤달콤한 양념장이 끈적하게 코팅되어 있죠. 붉은 양념 위로 무심하게 뿌려진 통깨가 맛의 열기에 극강의 고소함을 추가하며 풍미를 더합니다. 밥반찬이라기보다는 술 생각이 나는 술안주로서, 하지만 막상 술안주로 시키면 공깃밥이 절실해지는 밥반찬으로서 그야말로 리그 오브 레전드(LoL) 챔피언 르블랑(LeBlanc), 찰나의 순간에 밥도둑과 술안주 사이를 오가는 폭력적인 두 얼굴의 플레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덮밥/쌈밥/볶음의 바운더리는 나라와 나라를 경계 짓는 국경만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만큼, 사계절의 구분만큼이나 분명한 것입니다. 백반집 사장님들께는 다소 실례되는 말씀일 수 있으나, 사장님들께서는 종종 세 가지의 경계를 혼동하는 과오를 범하시곤 하죠. 이를테면 '제육볶음'은 반드시 불에 태우듯이 볶은 스모키함이 있어야 합니다. 고기를 집어 들었는데 양념이 주르륵 흘러내린다면, '쌈을 싸 먹어야겠는걸' 하는 마음이 든다면 나는 단호히 no라고 말하겠습니다. 용기와 소신을 담아 그것은 참된 의미의 제육볶음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덮밥 및 쌈밥의 장르로서의 제육이니까요. 제육볶음은 덮밥처럼 든든하다든지 쌈밥처럼 건강한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기름지고 사악해야 합니다. 맵고 달고 짜며 불맛과 같이 타오르는 죄책감이 들어야 합니다. '좋아, 오늘은 공깃밥도 후레쉬도 추가하자' 하는 곱버스(2X) 풀매수의 충동이 절로 들어야만 합니다. 아아, 그런데. 이 백반집의 제육볶음, 위험했습니다. 지글거리는 터프한 소리와 함께 나의 테이블 위에 내려앉은 검은 무쇠 철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볼케이노였습니다. 잔뜩 달아오른 철판의 열기에 붉은 양념이 타닥타닥 격렬한 비명을 지르며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비계가 잔뜩 붙은 돼지고기의 고소한 기름이 자작하게 끓어오르며 하얀 연기를 뿜어냈습니다. 코끝을 마비시킬 듯 직관적으로 파고드는 '아는 맛'의 향, 양념이 눌어붙으며 만들어내는 그 알싸한 불향! 밥을 부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지극히 위협적인 맛! 소주를 시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만드는 매혹적인 맛! 정석적인 제육볶음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이든 정석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이 제육볶음은 나로 하여금 이성이 마비된 채로 폭풍이 휘몰아치듯 밥과 술과 고기를 끝장내게 만드는 끝내주는 녀석이었습니다. 게슈탈트 학파의 거장인 베르트하이머가 이 제육볶음을 맛보았다면, 그는 아마 시각이 아닌 미각에서 그 이론을 완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흩어져 있는 점들이 모여 하나의 선을 이루는 완벽한 구조적 통합을 혀끝에서 발견하는 거죠. 이제 와서 고백하는 것이지만, 사실 이 백반집 사장님에 대해서는 그다지 길게 늘어놓을 만한 이야깃거리가 없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말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제육볶음을 싹싹 먹어치운 뒤 계산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그는 TV 화면 속 야구 중계에 시선을 고정한 채, 흡사 닌자와도 같은 신속하고 군더더기 없는 모션으로 오직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을 뿐입니다. 만약 전세계 콩나물 다듬기 대회가 있다면 그는 아마 3연속 챔피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9회 말 투아웃의 만루 위기 상황보다 콩나물 대가리를 떼어내는 전경(Foreground)과 배경(Background)의 분리에 더 집중하고 계셨지요.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나와 테이블 하나만큼의 거리(내가 좋아하는 친절의 거리입니다)를 두고 맛있는 알감자조림을 수북이 리필해 주었고, 교과서 첫 페이지에 실려도 좋을 만큼 모범적인 제육볶음 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치열한 손맛을 뽐내던 10m 거리의 도시락집도, 공복 유산소 인간을 위기롭게 만드는 고깃집과 된장찌개 집도 아닌 이 허름한 백반집의 단골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수요일, 토요일과 일요일, 심지어 공휴일에도 문을 열면서 이번 수요일에도 아무런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어딘가로 잠적해 버린 사장님. 헬스장에서 돌아오던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 번 곱버스(2X) 풀매수의 타이밍을 남몰래 점치며 집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