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og-writing # 동네산책(1) 모기를 잡아주는 카페 사장님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500m 반경 내의 동네는 일종의 '집 앞 카페' 불모지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다행히, 참으로 다행히도,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 한 군데 있습니다. 만 3년째 하나뿐인 그곳, 나의 소중한 단골 카페. 이 글은 그곳에 바치는 작은 헌정사입니다. 나는 무엇이든 과한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를테면 사람이 북적거리거나, 음악이 소음이 되는 곳, 장식이 너무 많거나 조명이 너무 밝은 곳, 친절이나 불친절이 지나친 곳 등등 말이죠. 모두 거르다 보면 집에선 점점 멀어지고, 선택지는 계속해서 좁아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나의 단골 카페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래된 적벽돌 타일과 석재 기둥, 간결한 가구와 잔잔한 음악, 그리고 몇 가지 시그니처 커피가 있습니다. 담백합니다. 이상한 음악, 이상한 메뉴, 이상한 꾸밈이나 이상한 이벤트 같은 걸 전혀 하지 않아 주는 카페입니다. 이상한 휴무일이나 이상한 공지사항, 이상한 영업시간 변경 없이 기대하는 시간에 기대하는 자리에서 기대하는 맛을 내어주는 공간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이토록 담백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지만, 몇 해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도록 문을 열고 닫아준단 점에 대해서는 곱절의 고마움을 느낍니다. ![img](https://lh3.googleusercontent.com/d/1s4z0gXIHNZ1KuLHbq1XKTp8Dnk1odUCK) 아울러, 늘 같은 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마도)사장님의 스타일이 365일 일관되고 있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만 3년간 계절별로 사장님을 관찰한 결과, 나는 그에 대해 꽤 구체적으로 묘사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요즘 같이 따사로운 봄과 여름, 즉 매년 S/S는 두 가지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해변가의 서퍼 또는 골목의 스케이트보더 스타일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서퍼인데 서핑은 전혀 하지 않고, 보더인데 보드는 전혀 타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러니까, 그는 분명 서퍼들이 들르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웁니다. 그리고 활짝 열어둔 차창에 팔꿈치를 걸친 채 업템포 비트를 들으며 해변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막상 바다에 도착해서는 물에 발가락 한 개도 담그지 않습니다. 단지 뜨거운 모래사장 위 파라솔 그늘 아래에서 차가운 코코넛 음료를 마시다가 오렌지빛 석양을 즐기며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그런 사람이 자아내는 바이브랄까. 골목의 스케이트보더 스타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약간의 수염을 기르고 Vans와 같은 스트릿 브랜드를 종종 즐겨 입는다는 표면적인 사실에서 비롯된 인상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는 소위 말하는 보더 '까라'를 충족할 수 있는 브랜드로 마구 점철된 듯한 느낌이 아닌, 그만의 취향으로 채워진 아지트에 꽤 준수한 그라피티가 그려진 보드 하나쯤 소중히 걸려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건, 그가 보드를 전혀 타지 않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안전상의 문제나 테크닉의 부재와 같이 매우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골목의 룰과 서브컬처 무드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애티튜드를 갖췄달까. 심재(心齋). 도가(道家)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비움으로써 자유로움에 이르는 경지를 뜻합니다. 한 마디로, 멋의 본질만 취하고 과시하지 않는 담백함을 지니고 있달까, 사장님. 오늘도 카페 사장님은 루틴 하게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 특유의 이지(easy)한 복장에 햇빛에 적당히 그을린 피부색을 하고 있었지만, 자전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의 일관됨에 다시 한번 안심하며 그간 착실히 모은 쿠폰으로 바닐라 라테(아이스) 한 잔을 주문한 뒤, 가장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라테 한 잔 준비해 드릴게요" 그는 종종 오는 나를 분명히 기억해 주고 있었지만, 웃으며 눈을 마주치는 정석적인 인사를 제외한 사담은 전혀 건네지 않습니다. 늘 그래왔습니다. 그가 건네는 친절은 언제나 카운터 데스크만큼의 거리가 있습니다. '물=셀프'보다는 가깝지만 ‘목마르지 않으세요?'보다는 멀고, '시원한 물은 뒤편에 준비되어 있어요' 정도의 거리감, 그러나 이제 엷은 미소가 함께 하는. 아아,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유형의 친절입니다. 아아, 그는 친절한 사장님, 하지만 결코 친구는 될 수 없는 사장님. 가을과 겨울, 즉 F/W에는 모닥불과 장작 도끼를 가까이하는 캠핑 마니아처럼 플란넬 셔츠를 입고 털모자도 쓰지만 어쩐 일인지 캠핑은 전혀 다니는 것 같지 않은. 아아, 그는. 친절도, 패션도, 일관되게 초연한 사장님입니다. 언제나처럼 한결같은 맛의 바닐라 라테를 안심하고 홀짝이고 있는데, 나의 시야각 가장자리로 무언가 슝- 날아 들어왔습니다. 이맘때쯤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모기 한 마리였습니다. 손을 휘휘 저었습니다. 쫓아버리려고요. 그런데 그 순간, 정체 모를 형체가 훅 다가왔습니다. 앗, 분명 1초 전까지만 해도 카운터 뒤에 머물러 있던 사장님이었습니다. 아니, 카운터에서 테이블까지 순간이동이라도 한 걸까? 상당한 속도감이었습니다. 발자국 소리도 없이, 마치 시노비 닌자처럼요. 만 3년간 일관되게 느릿한 바이브를 풍기던 사장님이 말이죠. 사장님은 약간 수줍은 미소를 띤 채 전기 파리채를 들고 있었습니다. 무인양품 감성의 미니멀한 오프화이트(off white) 디자인의 전기 파리채였습니다. 아아, 지독한 탐미주의자... 어디서 산 것인지 당장 말해주길 바랍니다. 그의 미소는 뭐랄까, '당신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진 않지만, 아무래도 우리 사이의 거리를 조금 더 좁혀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와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나의 등 뒤, 벽에 붙은 모기로 말이죠. 보통 모기가 아니었습니다. 몸통에 선명하게 그려진 세 줄의 하얀 줄무늬가 보였습니다. 아아, 아디다스 모기(산모기)였습니다. 물리면 안 됩니다, 안 될 일이지요. 내가 두 손을 모아 어깨를 웅크리는 동안, 그는 짐짓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파리채를 휘둘러 등 뒤의 모기를 잡아주었습니다. 힘없이 추락하는 모기를, 우리는 함께 확인하였습니다. 눈을 마주친 우리는, 고개를 마주 끄덕였습니다. 서로의 마음속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확실히 잡았네요.' / '네, 확실해요.' 그는 전기 파리채를 뒷짐 진 채 유유히 카운터 데스크 뒤로 돌아갔고, 나는 다시 무언가를 끄적이던 노트로 돌아왔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맛있는 바닐라 라테를 기분 좋게 마시며 기분 좋은 글씨로 노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심재(心齋) 사장님이 모기를 잡아주었다. 아아, 친절한 사장님. 그는 믿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