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og-writing
# 활자(책)
>`2025-10-26T08:03:48: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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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이 좋은 소설을 좋아합니다. 나의 멱살을 잡고 이야기의 터널 속으로 냅다 끌고 들어가는 그런 힘 말입니다. 문체가 화려하지 않아도, 소재나 무드가 특별하지 않더라도 이야기가 가진 근육이 단단한 소설이 있습니다. 몇 년간 웨이트나 수영, 러닝을 꾸준히 해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밴 근육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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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설이 주는 단단함은 독자를 안심시키면서도 책을 펼친 자리에서 꼼짝 못 하게 만듭니다. 한 번 그 맛을 본 사람은 결국 책을 고를 때 ‘힘이 있나, 없나’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맥아리 없는 소설은 점점 고르기 어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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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2T07:55:14:00+09:00`
>[[싯다르타(Siddhartha)]]를 읽고 난 뒤 느낀 점은 여느 다른 책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나는 나의 삶에 대해 사색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만들어준 것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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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2T17:23:29: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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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슬슬 길어지는 일요일 오후. 도서관에 들렀는데,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있는 걸 보고 나는 내심 놀랐습니다. 공부를 한다던지,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볕 좋은 벤치에 앉아 놀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요일 오후에 도서관이란 장소를 골라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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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2T07:51:49: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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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소설([[로드워크(Roadwork)]]) 225페이지를 롤링스톤즈와 함께했습니다. 책 읽을 때 음악을 잘 듣는 편은 아니지만, 『로드워크』는 특히 롤링스톤즈가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Midnight Rambler를 들으며 주인공이 다이너마이트로 집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장면을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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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3T07:50:08: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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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소설([[피가 흐르는 곳에(If it bleeds)]]) 110페이지를 그레이트풀 데드와 함께했습니다. 포크와 컨트리, 록이 오묘하게 뒤섞인 이 밴드의 음악은 1960~70년대 미국 배경의 중단편 소설의 무드를 잘 살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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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6T07:48:38: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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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재활용(STIFF; The Curious Lives of Human Cadavers)|『인체재활용』]] 은 흥미로운 책입니다. 단숨에 207쪽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우아하게 식사를 하며 볼 만한 책은 아닙니다. 사체 실험 리포트를 읽으며 Green Day의 Time of Your Life를 들었습니다. 훗날 나의 장례식에서 이 노래를 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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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6T07:48:38: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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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걸 읽고 무언가를 끄적거리면서 노는 건 즐겁습니다.
>책을 읽으며 대단한 교양을 갖추고자 하는 생각도 없고,
>글을 써서 대단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게임을 하며 놀듯이, 영화를 보며 놀듯이 그냥 노는 것입니다.
>읽고 쓰면서 놀이 욕구가 충족된다는 게 기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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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7T17:47:34: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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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재활용(STIFF; The Curious Lives of Human Cadavers)|『인체재활용』]] 에서 알게 된 흥미롭고 약간은 끔찍하지만 의외로 조금 귀여운 구석이 있고 딱히 쓸모는 없는 정보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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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낙하의 극한충격에서 인간이 생존할 가능성> 확인을 위해 모르모트 실험쥐를 작은 발사대에 붙여 새총처럼 발사하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모르모트들은 배가 아래를 향하도록 자세를 잡은 뒤 퓨슝 하고 발사되어, 약 75센티미터를 낙하한 다음 물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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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8T17:46:27: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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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융([[인간과 상징(Man and his Symbols)]])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의식 세계 속에서 놀기보다는 무의식의 세상 속에서도 놀아볼 작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의식의 영역이란 고작해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의 세계에는 책상 위에서 파도를 가르는 롱보드에 올라타 서핑을 하며 디스코 댄스를 출 수 있는 무한한 놀이 가능성이 있는데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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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2T07:43:48: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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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책을 읽다 알게된 유익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정보는 banker라는 단어가 중세 유럽의 도시에서 야외 벤치(뱅크bank)에 앉아 동전을 교환하던 사람들에서 유래된 이름이란 점입니다. 훗날 여기에 대출업무가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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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2T07:43:48:00+09:00`
> 역사책([[blog/Read/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Weltgeschichte to go)|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Weltgeschichte to go)]])을 읽다 보면 돌팔매질을 하며 매머드를 쫓던 인류가 현타를 느껴 돌멩이를 내려놓고, 땅에 곡식을 심으며 자연을 복종시키고야 말겠다는 원대한 작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한결같은 시나리오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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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과 보리, 옥수수와 콩으로 출발한 인류의 작전 계획은 성공적으로 작동하여 분업을 촉진시켰으며, 잉여 생산물이 낳은 이득이 탐욕을, 탐욕이 계급을, 계급은 다시 이를 욕망하는 대중을 탄생시키는 동안 인간은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나아가 이 행성에서 저 행성을 넘나들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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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2천여 년이란 거대한 시간의 흐름은 350페이지 남짓한 활자로 압축되어, 20세기의 끝자락 동양의 한 반도에서 탄생한 '나'라는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1.5킬로바이트 어치의 0과 1로 치환되어 디지털 공간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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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신은 그것을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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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3T16:29:31: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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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책이 묻기를: "우리는 망가진 세상을 고칠 수 있을까?"
> [[blog/Read/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Weltgeschichte to go)|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Weltgeschichte t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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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2T19:32:09: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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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오가 진실을 알기 위해 빨간약을 먹었듯이 나는 Alive 칼슘, 히알루론산, 루테인, 비타민 C 2000mg을 먹었습니다. 네오보다 더 많은 알약을 먹었지만 지혜의 총량이 증가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구한 T. E.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 을 샀지만, 하필 세 번째 책이 먼저 도착하는 바람에 개시할 수가 없습니다. 책이 늘었지만 지식의 총량이 증가하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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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30T11:15:22: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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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고 비참한 순간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웃긴데 슬프다는 말, 슬픈데 웃기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블랙 코미디, 그중에서도 코미디보다는 블랙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 그런 작품들 말이죠. 세상살이의 면면을 드러내려면 누군가는 어두운 구석을 봐야만 하고, 그 안에서 기어이 웃음을 발견하고야 마는 시선이 필요하겠죠. 나는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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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1T22:02:22: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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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소설([[blog/Read/상자 속의 사나이|상자 속의 사나이]])을 읽으며 느끼는 의외의 즐거움 중 하나는 상당히 길고 멜로딕한 이름의 등장인물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드미트리치 드로모프, 안드레이 예피미치 라긴, 반예카 츠베트코프 루케리야,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미하일로프 라던지 예브게니 표도리치 호보토프, 엘레냐 이바노브나 파블로바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이 사랑에 빠지면 더 흥미로워집니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 사람인 드미트리 드미트리치 구로프는 안나 세르게예브나라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처음에 말했던 드미트리치 드로모프나 네 번째로 말한 세르게이와는 다른 사람이므로 헷갈려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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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6T07:27:48: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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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동적인 기분으로 러시아 소설([[blog/Read/상자 속의 사나이|상자 속의 사나이]]) 338페이지를 마친 나는 이제 러시아에 대해 꽤 압니다. 이를테면 피로그(пиро́г)는 밀가루 반죽 속에 고기, 생선, 야채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구워낸 요리이고, 크바스(квас)는 엿기름, 보리, 호밀 따위로 만든 청량음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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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8T00:31:50: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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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을 수직의 탑으로 쌓는 것이 아니라 다면체로 연결하는 것은 꽤 느린 독서가 되지만 짜릿한 지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갈급한 지식욕의 소화도 돕고요. 하하, "갈급한" 이라니,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표현이군요. 고마워요 엣센-스 국어사전! (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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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3T12:39:46: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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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항상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독서에 국한된다기보다 모든 종류의 텍스트를 닥치는 대로 탐닉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가사, 자막, 편지, 간판, 신문, 기술 문서, 레토르트 음식 뒷면의 조리법까지. 물론 책도 좋아하지만, 책 또한 활자를 많이 담고 있는 하나의 장르로서 좋아할 뿐입니다. 외국어로 읽어야만 참된 맛이 느껴진다면 기꺼이 시간을 들여 그 언어도 공부합니다. 국경과 매체의 장벽을 걷어내고 활자 본연의 에너지만을 취하고 싶은 순수한 의지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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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자면 모든 것을 텍스트적인 맥락으로 이해하는 경험 자체를 좋아해 온 것 같습니다. 세상을 해석 가능한 스키마로 재구성하려는 본능에서 기인한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복잡한 과학 철학 논고나 편의점 영수증이나 나에겐 똑같이 해석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인 셈이죠.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나 자신 또한 하나의 텍스트로 기능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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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3T21:52:16: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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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해서 책 샀어요: 또 샀어요? 뭐 샀어요? 몇 권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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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6T20:43:27: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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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는 하면 할수록 조바심이 납니다. 이 세계에는 내가 죽을 때까지 다 읽지 못할 만큼 방대하고 탐스러운 활자들이 존재하고, 그에 반해 내게 허락된 시력과 뇌의 대역폭은 서글플 정도로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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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8T10:36:32: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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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를 깊이 명상하도록 만드는 책은 귀합니다.
> 양서(良書,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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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2T18:08:02: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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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책이 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답은 심플합니다. 좋아하는 것 옆에 또 좋아하는 것을 두면, 기분은 정확히 따불로 좋아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