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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둔기계

## yonkim's review (KR)
> [!note] yonkim 2026-06-05T11:36:54:00+09:00
> 구립 도서관에서 대여 후 p011 부근에서 구매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지 않는 작가의 여러가지 단상들을 의미있게 연결해 놓은 서정적 산문집. 은신처, 숨다, 지배적 여론으로부터의 탈주, 과잉된 연결 관계의 해체, 소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은둔 속에서의 의식적인 활동들을 통해 다른 무언가로 거듭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은둔기계.
예컨대 '1부 은둔하는 삶'의 1장은 야구에 관한 단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야구의 경기적 특성에서 죽음의 개념과 집의 개념을 발견한다. 이어서 시속 140km 의 속구 앞에서 타자가 마주하는 숙명적인 공포를 '야구의 이성은 진보가 아닌 영겁회귀에 기초하는 것' 이라 연결한다. 놀라운 연결, 지적 쾌락을 주는 연결이다. 계속해서 야구의 2차원적 특성(루와 루의 연결)으로 인해 축구와 럭비 경기와는 달리 병법적 상상력이 허용되지 않는 스포츠라 언급한 부분도 인상 깊다.
야구의 '아웃'의 순간은 삶의 비워냄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며, 나아가 욕망, 고독, 투쟁과 같은 관념의 세계로 놀랍게 확장된다. 그리고 p022 부근에서 이 모든 것들이 한 줌의 스코어로 응축된다는 표현과 함께 다시 야구로 회귀한다. 이 단상들은 파편적인 사유의 모음 같지만, 결국 처음에 던진 화두(야구에는 죽음의 개념이 있다)를 정확히 관통하며 순환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조각난 문단들이 거미줄처럼 얽히며 거대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면서도 분명한 구조적 쾌감을 선사한다. 어쩐지 은연중에 『은둔기계』 라는 낯설고 거대한 형상의 실루엣이 그려지는 것도 같다.
모든 단상은 세계로부터 주체적이고 엄격하게 한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세계를 관조한다. 관찰자-대상이라는 특유의 거리감을 내포하고 있고, 대상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건조하고 명징한 비유, 치밀하고 깊은 사유, 그럼에도 서정적인 문체로 모든 문단을 전개한다. 나는 이 모든 요소가 담길 수 있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이 책이 그렇다.
## Quote
> [!quote] **p011-012 | 야구**
> - 야구에는 죽음의 개념이 있다. 골을 넣거나 공격에 성공하는 것을 단위로 전개되는 대개의 구기종목과 달리, 세 사람의 죽음이 게임의 한 단위를 이루기 때문이다. 야구는 정교하게 디자인된, 체계적으로 반복되는 죽음의 연습이다. 야구는 죽음을 생산하고 죽음을 사실화한다. 야구처럼 노골적이고 흥미진진한 죽음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야구의 모든 기록은 어떻게 세 명의 타자들이 죽어갔는가에 대한 기억이며, 죽어간 타자들에 대한 방대한 통계다. | p011
>
> - 타자들은 숙명처럼 공포와 싸운다. 야구의 이성은 진보가 아닌 영겁회귀에 기초한다. | p012
>[!quote] **p033 | 친밀성**
>
>[[에로스(Eros)]]는 면이 아니라 선이다. 그 위에서 구르거나 눕거나 잠들 수 없다. 지지대가 없다. [[에로스(Eros)]] 속에서 모든 길은 가파르고 위험하다. 넘어지면, 선의 밖으로 발을 디디면, 그 안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에로스(Eros)]] 의 본질은 이 직선의 사건성, 유일성, 반복성에 있으며, 그것이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되는 어떤 면적에 있지 않다.
> [!quote] **p34 - p42**
> - 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나의 목숨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이, 그들의 삶이, 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한다. 그들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 - 너는 나를 사랑할 수 없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너를 내 안에서 전개시킬 뿐이다.
> - 누군가를 아무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발터 벤야민 선집 2)|발터 벤야민]], 2007:119)
> - 사랑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악이 그러하듯.
> - 부부는 정치적 단위다.
> [!quote] **p049-052 | 때**
>
> - 쓰는 자는, 오직 미래에만 현재화될 미지의, 다수의, 통제 불가능한 해석 상황들의 주름을 만들고 있다. 하나의 문장에는, 미래에 누군가 그것을 읽을 때 그들의 의식에 발생하게 될 새로운 촉발, 감상, 생각, 감정의 가능세계들이 응축되어 있다.
> -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흐른다는 관점 또한 포기할 것
>[!quote] **p056-063 | 은둔**
>
>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어떤 경우 '연결하고' 어떤 경우 '연결을 끊는' 동물, 은둔할 줄 아는 동물이다.
> - 진정한 안식은 사후가 아니라 생의 한복판에서 이미 추구되고 있어야 한다. 그 방편이 은둔이다.
> - 고독은 혼자 있는 자의 심정이 아니라, 욕망하지 않는 것과의 연결을 끊은 자가 확보한 자유다.
> - 자발적 유배로서의 은둔. 전면적이지 않은, 생활의 특정 부분을 유배시키기. 가령, 글을 쓰는 모든 밤은 작가에게 하나의 유배지다.
> [!quote]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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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극은 헐벗은 자의 미학이 아니다. 비극은 부유한 자의 잉여감정 처리법이다. 트러블에 휩싸여 일상을 허둥대는 자들에게는 비극 따위에 바칠 시간이 없다. 비극을 통한 주체의 성립을 말하는 모든 서사는 위험하다.
> [!quote] **p156**
>
> 사회학적 묵상의 형식들ㅡ등산,통증,기도,법정,좌절,애도,술자리......
> [!quote]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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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취에서 깨어나는 순간 우리는 떠오른 만큼의 높이를 바닥에 돌려주어야 한다. 술에서 깨어나는 참담한 아침의 우울은, 취기 속에서 존재가 허공에 떠 있을 때 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들이 땅으로 떨어져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자의 곤혹이다. 우리는 작은 추락을 겪는다.
## Outgoing Links
[[브뤼노 라투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발터 벤야민 선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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