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og-reading # 은둔기계 ![cover|200](http://books.google.com/books/content?id=uJRCEAAAQBAJ&printsec=frontcover&img=1&zoom=1&edge=curl&source=gbs_api) ## yonkim's review (KR) > [!note] yonkim 2026-06-05T11:36:54:00+09:00 > 구매도서 >[!quote] 본문 중 >“당신은 이 세계를, 이 시대를, 당신의 삶을, 그리고 관계들을 어떻게 감당해가고 있는가?” 『은둔기계』는 '은둔'에 대한 단상을 모아놓은 산문집입니다. 대중과 지배적 여론으로부터의 탈주, 과잉된 연결 관계의 해체, 소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자기 안으로의 은둔 속에서 다른 무언가로 거듭나는 이야기입니다. 심도 깊은 단상들이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 하나의 거대한 메시지를 직조해 냅니다. 예컨대 '1부 은둔하는 삶'의 1장은 야구에 관한 단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는 이미 발표된 이전의 글 [야구, 그 죽음의 기록에 대한 매혹](https://scholar.kyobobook.co.kr/article/detail/4010023933609)을 일부 변형/재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야구의 경기적 특성에서 죽음의 개념과 집의 개념을 발견합니다. 이어서 시속 140km 의 속구 앞에서 타자가 마주하는 숙명적인 공포를 '야구의 이성은 진보가 아닌 영겁회귀에 기초하는 것' 이라 연결합니다. 놀라운 지적 쾌락을 주는 연결이라 생각했습니다. 계속해서 야구의 2차원적 특성(루와 루의 연결)으로 인해 축구와 럭비 경기와는 달리 병법적 상상력이 허용되지 않는 스포츠라 언급한 부분도 인상 깊습니다. 야구의 '아웃'의 순간은 삶의 비워냄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며, 나아가 욕망, 고독, 투쟁과 같은 관념의 세계로 확장됩니다. 그리고 p022 부근에서 이 모든 것들이 한 줌의 스코어로 응축된다는 표현과 함께 다시 야구로 회귀합니다. 첫인상은 얼핏 잠언집과 같지만, 모든 문단은 각 챕터의 화두로부터 점진적으로 깊어지는 사유를 전개합니다. 명징하고 치밀한 비유, 서정적인 은유로 가득 찬 문단들이 서로 순환하는 구조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마지막 다섯 페이지쯤 남았을 때,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읽게 될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이 책은 엄격하게 한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세계를 관조합니다. 300 페이지를 넘어선 지점에서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은, 이 사유들이 대상과 주체 간의 관계에 대한 치열한 고찰이라는 점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관찰자, 대상은 피사체라는 특유의 거리감을 내포하며, 그 대상에는 자기 자신마저 포함됩니다. 이 관찰 속에서 『은둔기계』라는 낯설고 거대한 형상이 서서히 그려집니다. 텍스트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 중 ‘[[아상블라주(Assemblage)]]’가 있습니다. 일상적인 물건이나 폐품, 잡동사니들을 조합하여 만든 3차원 추상 예술 작품을 말합니다. 저자가 투병, 코로나, 결혼과 같은 삶의 변곡점을 지나는 동안 고정된 나(Identity)를 해체하고, 주위를 둘러싼 유기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한 메타포로써 [[아상블라주(Assemblage)|이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책을 마친 뒤, 나는 세계에 대해 지니고 있던 온갖 강박을 내려놓고 관조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귀한 책, 단연 양서(良書)입니다. 타인은 결코 포섭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계속해서 탐색의 대상이 됩니다. 관계의 영원을 믿지 않기에 매 순간 온 마음을 쏟을 수 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나로 환원할 수 없기에 매번 새로운 호기심의 동력원이 됩니다. 세계는 계속해서 발각되는 것이기에 허상, 과시, 오만, 차별, 편견, 권위로 축조된 모든 찰나적인 착시로부터 기꺼이 탈주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나의 은둔 또한 성립합니다. 고정된 나를 해체하고 매 순간 삶을 둘러싼 파편들을 조율하고 배치하는 아상블라주로서의 세계.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가능세계를 탐색하는 주체적 은둔, 대상과 나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두는 관조를 택함으로써 고립 대신 세계와 연결되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 즉, 생존으로써의 은둔. 그것이 내가 이해한 『은둔기계』입니다. [[왜살지#^540ea0]] ## Quote > [!quote] **p011-012 | 야구** > - 야구에는 죽음의 개념이 있다. 골을 넣거나 공격에 성공하는 것을 단위로 전개되는 대개의 구기종목과 달리, 세 사람의 죽음이 게임의 한 단위를 이루기 때문이다. 야구는 정교하게 디자인된, 체계적으로 반복되는 죽음의 연습이다. 야구는 죽음을 생산하고 죽음을 사실화한다. 야구처럼 노골적이고 흥미진진한 죽음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야구의 모든 기록은 어떻게 세 명의 타자들이 죽어갔는가에 대한 기억이며, 죽어간 타자들에 대한 방대한 통계다. | p011 > > - 타자들은 숙명처럼 공포와 싸운다. 야구의 이성은 진보가 아닌 영겁회귀에 기초한다. | p012 >[!quote] **p033 | 친밀성** > >[[에로스(Eros)]]는 면이 아니라 선이다. 그 위에서 구르거나 눕거나 잠들 수 없다. 지지대가 없다. [[에로스(Eros)]] 속에서 모든 길은 가파르고 위험하다. 넘어지면, 선의 밖으로 발을 디디면, 그 안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에로스(Eros)]] 의 본질은 이 직선의 사건성, 유일성, 반복성에 있으며, 그것이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되는 어떤 면적에 있지 않다. > [!quote] **p34 - p42** > - 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나의 목숨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이, 그들의 삶이, 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한다. 그들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 - 너는 나를 사랑할 수 없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너를 내 안에서 전개시킬 뿐이다. > - 누군가를 아무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발터 벤야민 선집 2)|발터 벤야민]], 2007:119) > - 사랑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악이 그러하듯. > - 부부는 정치적 단위다. > [!quote] **p049-052 | 때** > > - 쓰는 자는, 오직 미래에만 현재화될 미지의, 다수의, 통제 불가능한 해석 상황들의 주름을 만들고 있다. 하나의 문장에는, 미래에 누군가 그것을 읽을 때 그들의 의식에 발생하게 될 새로운 촉발, 감상, 생각, 감정의 가능세계들이 응축되어 있다. > -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흐른다는 관점 또한 포기할 것 >[!quote] **p056-063 | 은둔** > >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어떤 경우 '연결하고' 어떤 경우 '연결을 끊는' 동물, 은둔할 줄 아는 동물이다. > - 진정한 안식은 사후가 아니라 생의 한복판에서 이미 추구되고 있어야 한다. 그 방편이 은둔이다. > - 고독은 혼자 있는 자의 심정이 아니라, 욕망하지 않는 것과의 연결을 끊은 자가 확보한 자유다. > - 자발적 유배로서의 은둔. 전면적이지 않은, 생활의 특정 부분을 유배시키기. 가령, 글을 쓰는 모든 밤은 작가에게 하나의 유배지다. > [!quote] **p148** > > 비극은 헐벗은 자의 미학이 아니다. 비극은 부유한 자의 잉여감정 처리법이다. 트러블에 휩싸여 일상을 허둥대는 자들에게는 비극 따위에 바칠 시간이 없다. 비극을 통한 주체의 성립을 말하는 모든 서사는 위험하다. > [!quote] **p156** > > 사회학적 묵상의 형식들ㅡ등산,통증,기도,법정,좌절,애도,술자리...... > [!quote] **p166** > > 도취에서 깨어나는 순간 우리는 떠오른 만큼의 높이를 바닥에 돌려주어야 한다. 술에서 깨어나는 참담한 아침의 우울은, 취기 속에서 존재가 허공에 떠 있을 때 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들이 땅으로 떨어져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자의 곤혹이다. 우리는 작은 추락을 겪는다. > [!quote] **p317** > 가능세계는 선연한 물질성, 부정할 수 없는 현실성을 두르고 나타난다. 여행하는 인간의 뇌리를 스치는 이미지들은, 살아진 시간과 살아보지 못한 공간의 몽타주다. 여행이 끝날 때쯤 여행자는 여행을 통해 예상치 않게 변화해버린 새로운 자아, 실제 자아의 사실성을 부식시키면서 나타나는, 가능한 자아들과 엮여버린 이상하게 새로운 ‘자아’를 획득한다. ## Extracts - [[아하스베루스(Ahasverus)]] - [[아상블라주(Assemblage)]] - [[구텐베르크 은하계(The Gutenberg Galaxy)]] - [[랑그(Langue)와 파롤(Parole)]] - [[마소레(Massoret)와 카발라(Cabbala)]] ## Outgoing Thoughts - 단상(1) - [[왜살지#^540ea0]] - 단상(2) - [[왜살지#^cdc782]] ## Outgoing Links - [[브뤼노 라투르]]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발터 벤야민 선집 2)]] - [[디알로그(Dialogues)]] - [[감각의 논리]] - [[도덕의 계보, 이사람을 보라(니체 선집)]] - [[정신의 삶]] - [[네트워크의 군주]] ## Back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