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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름
장댓비가 창문을 세차게 두들기던 날, 우리는 미지근해진 몸으로 빨래 건조기 앞에 쪼그려 앉아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처럼 말갛게 웃고 있었다. 창틈에 스며든 쇠 비린내와 덜 익은 잎사귀 냄새를 맡으며 곧 날이 갤 거야, 날이 개면 해를 쬐러 나가자, 고 서로 말했다. 비는 이틀 동안 멎지 않았고 우리는 밤새 젖었다가 마르기를 반복했다. 손바닥과 목덜미에 풀비린내가 밸 때까지, 서로의 맨살을 짓이기며.
내가 그리워하는 건 우리의 여름이다. 감정을 마음껏 끼얹으며 서로를 흠뻑 적시던 그 여름. 빛을 쏟아내기라도 하듯 찬란하게 웃던 날들, 어깨를 들썩이며 컹컹 울던 날들이 얼룩진 여름. 손가락으로 눈 언저리를 가만히 눌러보면 금방이라도 네가 축축이 배어 나올 것만 같다. 그 여름, 머리로는 잊었지만 마음으로 다 놓아주지 못한 날들의 우리가.
너를 보낸 그해엔 눈물에서도 풀 비린내가 났다. 젖은 잔디를 맨발로 꽉 눌러 밟으면 피어오르는 그런 냄새. 길을 가다가도 한 번씩 발을 보느라 고개를 떨구곤 했다. 그때마다 네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런 너를 훔쳐 닦았다. 찬 바닥에 덩그러니 버려둘 수가 없어서, 그렁그렁 너를 매단 채로 걸음을 옮겼다.
비가 쏟아지면 내 마음도 무너졌다. 너를 단단히 파묻은 흙무덤이 물에 씻기며 기어이 너의 살결이 드러났다. 처음 몇 번은 엉엉 울며 너를 구하려 했다. 아마도 나를 구하려 했을 것이다. 진흙이 범벅된 손으로 너를 다시 묻은 날도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언제부턴가는 손을 대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이 그저 비 오는 날이 되었을 무렵엔 네가 내 마음속 어디에 잠들어 있는지조차 잊었다.
빨래를 걷다 바삭하게 마른 타월을 만지면, 젖은 풀냄새를 맡으면, 카메라에 익숙한 거리가 담기면 문득문득 시간이 멈추곤 했지만 그 어디에도 너는 없었다. 여름옷을 정리하다 주머니 안에서 구겨진 영화 티켓이 나왔을 때도 너라는 기억은 찰나의 섬광처럼 지나갔다. 지난 계절을 한아름 내다 버리는 동안 구겨진 티켓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비로소 그 여름이 완연히 저물었음을 실감한다. 우리에 대한 나의 그리움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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