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의 시간은 시작점이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계속된 걸까? 칸트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 중 하나인 '이율배반(Antinomy)' 을 설명한다. 아래는 "우주의 시간은 시작점이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계속된 걸까?"라는 질문을 두고 인간의 이성이 어떻게 고장 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첫 번째 증명: "우주의 시간은 반드시 시작점이 있어야 한다" 우주가 시작점 없이 과거로부터 '무한히' 존재해 왔다고 가정할 때: - '무한(Infinity)'이라는 말의 뜻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 - 그런데 만약 과거가 무한하다면, 우주가 생겨난 시점부터 '현재(오늘)'까지 오기 위해 **'끝나지 않는 무한한 시간'을 다 끝마치고(경과하고) 왔어야 한다**는 뜻이 됨. - 모순 발생: "끝나지 않는 것을 끝마쳤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무한한 시간은 다 지나올 수가 없음 - 결론: 따라서 과거가 무한하다는 것은 틀렸으며, 우주(시간)는 반드시 언젠가 '시작된 시점'이 있어야만 한다. ## 두 번째 증명: "우주의 시간은 시작점이 있을 수 없다" 이번에는 반대로 우주에 짠! 하고 생겨난 '시작점'이 있다고 가정할 때: -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는 아무런 사물도, 사건도 없는 완벽하게 '텅 빈 시간(공허한 시간)'만 있었을 것 - 텅 빈 시간 속에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아무 차이가 없음(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 모순 발생: 그런데 왜 하필 수많은 텅 빈 시간 중 '특정 어느 한순간'에 우주가 갑자기 시작되었을까? 아무 특징도 없는 텅 빈 시간 속에서, 우주가 하필 '그때' 시작될 이유나 계기가 생겨날 수 없음. - 결론: 따라서 특정한 시작점이 있다는 것은 틀렸으며, 우주(시간)는 시작점 없이 영원히 존재해 온 것 # 이율배반과 칸트의 깨달음 우리는 지금 논리적인 딜레마에 빠졌다. 시작이 있다고 해도 말이 안 되고, 시작이 없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두 가지 논리 모두 완벽한데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 칸트는 이렇게 이성이 꽉 막혀버리는 현상을 '이율배반(Antinomy)'이라고 불렀다. 상태에서 칸트가 얻은 위대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시공 관념은 전체로서의 우주에는 적용될 수 없다**'== 인간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시간이라는 안경을 껴야 한다. 하지만 이 안경은 우리가 일상적인 경험을 할 때나 쓸모 있는 것이지, 인간의 경험을 벗어난 '우주 전체'의 궁극적인 진리를 파악하는 데는 쓸 수 없다는 것. 마치 몸무게를 자로 재려고 하면 오류가 나듯, 인간의 시공간 개념을 우주 전체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다 보니 이런 모순이 발생했다고 칸트는 결론지었다. # Quotes/References >[!quote] 칼 포퍼의 [[blog/Read/추측과 논박 1,2(Conjectures and Refutations)|추측과 논박 1,2(Conjectures and Refutations)]] 에서 인용 > > '시간적 시초의 유무에 대한 고찰'첫번째 증명을 위해 무한히 계속되는 해 years 라는 관념의 분석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무한히 계속되는 해는 영원히 계속되며 끝이 나지 않는 계열이어야 한다. 그것은 종결될 수 없다. 종결되거나 경과해 버린 해의 무한성은 용어상 모순된다. 칸트는 단적으로 이렇게 논한다. 시간적인 세계는 시간적인 시초를 가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이 현재의 순간에 무한한 햇수가 경과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첫번째 증명의 결론이다. > > 두번째 증명을 위해서는 완전히 공허한 시간(세계가 존재하기 이전의 시간)이란 관념의 분석부터 시작한다. 그 속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시간은, 사물 및 사건과 맺는 관계로 말미암아 그것 내부의 어떤 시간 간격도 다른 시간 간격과 구별되지 않는 시간이다. 왜냐하면 사물이나 사건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칸트는 단적으로 이렇게 논증한다. > > 시간적인 시초가 있을 경우에는 시간 간격(세계가 시작되기 직전의 순간)이 있을 것이므로, 세계에는 시간적인 시초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공허하면서도 세계의 한 사건과의 밀접한 시간적 관계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시간 간격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 > 우리는 여기서 두 증명간의 충돌을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충돌을 칸트는 <이율 배반 antinomy> 라고 불렀다.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러한 이율 배반에서 칸트는 무슨 교훈을 이끌어냈을까? 그가 결론짓기를, 우리의 시공 관념은 전체로서의 우주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하였다. > [!quote] 칼 포퍼의 [[blog/Read/추측과 논박 1,2(Conjectures and Refutations)|추측과 논박 1,2(Conjectures and Refutations)]] 에서 인용 > [[순수 이성 비판|『순수 이성 비판』]]의 비판 대상은 순수 이성이다. 그 책은 감각 경험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의미의 <순수한 세계>에 관한 모든 추론에 대해 비판과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는 세계에 관한 순수한 추론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이율배반(Antinomy)]]에 빠져들게 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순수 이성을 공격하였다. 흄에 의해 고무된 칸트는 감각 경험의 한계가 곧 세계에 관한 모든 건전한 추리의 한계라는 점을 확립하기 위해 [[순수 이성 비판|『순수 이성 비판』]]을 기술했던 것이다. --- # Outgoing Links - [[순수 이성 비판]] # Back Link - [[blog/Read/추측과 논박 1,2(Conjectures and Refutations)|추측과 논박 1,2(Conjectures and Refut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