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rev ┈┈┈┈┈┈┈┈┈┈ | ┈┈┈┈┈┈┈┈┈┈ Next ❯❯ |
|:----------------|----------------:|
| [[취향탐구-겨울]] | [[취향탐구-술]] |
#취향탐구
- creation date: 2025-01-22
- author: yonkim
# 취향탐구-신문
매일 아침, 잠옷 바람으로 계단을 내려가 새벽 신문을 챙긴다. 요즘 같이 차가운 날씨에는 포근한 이불 안에서 지난밤 내내 덥혀 두었던 몸이 찬 물 끼얹듯 금세 식어버린다. 기지개 켜기나 길고양이 찾기는 생략하고 냉큼 신문만 챙겨 들어와야 한다.
단정하게 접힌 아침 신문엔 누군가의 부지런함이 묻어있다.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골목을 바삐 누비고 다녔을 생업의 발걸음. 아침잠이 많은 나는 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식탁 위에 올려둔 신문을 펼치며 다시금 쏟아지려는 졸음을 휙휙 쫓아낸다.
아침 신문 1면은 언제나 떠들썩하다. 현장감 넘치는 사진, 크다 작다 리드미컬한 활자들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세상은 정말 매일같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구나 싶다. '찬바람'. '반토막', '무더기' 같이 쉽게 와닿는 단어들로 압축 요약된 헤드라인 몇 줄. 그리고 그 아래로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송구스러운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러면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뭐가 잘 안 돌아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분양권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데, 바로 옆 면의 전면 광고는 신규 분양단지 아파트 광고인 아이러니. 아파트 브랜드 로고엔 아무리 봐도 살 오른 멧비둘기 한 쌍이 그려져 있지만, 정작 브랜드 측에서는 원앙이라고 설명한다. 원앙은 전통적으로 부부의 화합, 사랑, 충실함을 상징한다는데, 요즘처럼 집 한 채 마련하기 힘겨운 세상에서는 원앙 백 마리가 있어도 큰 힘을 보태지는 못할 것 같다.
이어서 어디 먼 나라에서 지진이 나고, 불이 났다는 소식. 그 옆으로 치약과 두루마리 휴지를 로켓 배송 해주는 회사의 CEO가 오픈 AI 샘 올트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사진을 보다 보면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인지 고개가 절로 갸우뚱 해진다.
코스피 퇴출 위기에 놓인 부실기업 A사의 소식에 괜히 주식 앱을 켜보고, 주간수익률 30%를 달성했다는 B사의 주식은 1주도 사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덩달아 깨달으며 괜한 아쉬움도 느낀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인생은 고통 그 자체지만 이 고통이 살아갈 힘을 준다고, 부와 명예는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덜 불행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라고. 쇼펜하우어의 격언을 빌어 주식 앱의 얄궂은 파란 불이 주는 고통을 존버의 힘으로 애써 치환해 본다.
주식, 영화, 스포츠, 바둑 기사를 지나 마지막 장의 숨은 코너인 오늘의 운세에 도착하면 맛없는 채소 볶음 속 숨어 있던 소시지를 발견한 듯한 기분. 내 띠에 맞는 동물 그림을 찾아 연도를 확인하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알쏭달쏭한 말들이 적혀 있는 오늘 나의 운세를 두 번 읽는다. 무슨 말인지 당최 모르겠지만 엄청 나쁘지만 않으면 됐다며 가뿐한 마음으로 신문을 덮는다. 오늘의 세상 소식 끝.
---
- [[Index-Writings|Return to list]]
| ❮❮ Prev ┈┈┈┈┈┈┈┈┈┈ | ┈┈┈┈┈┈┈┈┈┈ Next ❯❯ |
|:----------------|----------------:|
| [[취향탐구-겨울]] | [[취향탐구-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