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rev ┈┈┈┈┈┈┈┈┈┈ | ┈┈┈┈┈┈┈┈┈┈ Next ❯❯ | |:----------------|----------------:| | | | #회복산책 - creation date: undefined - author: yonkim # 종말을 연습하며-5. 나만 빼고 모두 사라진 세계에서 --- 나는 종종 생각합니다. 혼자 남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요. 세상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 홀로 고립된 시간에 대해 말입니다. 혹시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무시무시한 자연재해라던지, 전쟁이라던지, 치명적인 바이러스 같이 세상이 멸망할 만한 사건은 없어도 됩니다. 단지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나만 빼고 모두 사라졌다고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처음 며칠간 나는 거의 집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기척을 잃은 도시가 만들어내는 낯선 감각에 압도되어서요. 한동안은 벽과 지붕이 주는 안정감 아래에 숨어있겠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립이 주는 공포는 점차 단순해지고 나는 서서히 적응할 것입니다. 그리고 적막 속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이상한 결핍이 반드시 자라나겠죠. 처음엔 답답해서 바람을 쐬고 싶은 기분으로, 다음엔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요. 그리고 이윽고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 끝없는 불안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결국 용기를 내 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세상은 너무나도 조용해졌다는 사실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도시는 의외로 꽤 오래 버틸 것이고, 하루이틀로 모든 것이 무너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나 없이도 지속되고, 나는 그저 나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아도 됩니다. 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봅니다. 욕도 해보고, 목놓아 울어보기도 합니다. 아무도 창문을 열고 내다보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기억 속 존재가 아니군요. 세상의 속도가 더 이상 나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수많은 시선과 목소리의 잔향 속에 서 있는 그림자로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남은 것은 내가 아는 나 자신과 오직 나를 위해서만 흘러가는 시간뿐입니다.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시원한 해방감이 듭니다. 삶을 옥죄던 여러 겹의 굴레를 벗어던진 순간의 나는, 오로지 내 안으로 향하는 것들만 생각합니다. 삶의 잡음에 묻혀 들리지 않던 마음의 소리도 또렷해집니다. 이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나갈지 스스로 시간을 들여 묻습니다. 어제의 관계와 내일에 대해 복잡했던 생각들은 하나둘씩 멀어지고, 불안이 가신 자리엔 넓고 고요한 공간이 생겨납니다. 묘한 평온함이 그 안을 가득 채웁니다. 지금 나의 삶은 사실, 진짜가 아닌 타인에게 반사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만 빼고 모두 사라진 세계를 종종 생각합니다. 고립은 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지, 무엇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지 말해줍니다. 삶의 모순을 전부 소거하고 나면, 어쩌면 산다는 건 이 두 가지가 전부일지도요. 끝을 떠올릴 때야 비로소 시작이 보이는 것일까요?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종말을 연습합니다. 📌오늘의 연습 - 내 안으로 향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 [[Index-Writings|Return to list]] | ❮❮ Prev ┈┈┈┈┈┈┈┈┈┈ | ┈┈┈┈┈┈┈┈┈┈ Next ❯❯ | |:----------------|----------------:| | | |